달콤한 누림을 함께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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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gene
  • 조회 수 1257

적극적인 의미에서 가지치기는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원은 정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생활 가운데
우리는 주님으로부터의 가지치기도 필요하고
서로서로 가지를 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 온전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는데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가지치기를 당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서로서로에 의해 가지치기를
당할 때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공경하는 마음이 있고
또 그분은 우리를 합당하게 가지치기 때문에
거의 어려움이 없는데
우리가 지체의 부족함을 발견할 때
가지를 쳐주는 것에는 두가지 면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것이 쉽지 않은 데서 오는 어려움이요
다른 하나는 가지를 쳐 줄
적당한 타이밍을 잡지 못한 데 따른 어려움입니다.


우리는 곧잘 가지를 쳐 줘야 할 지체를
교회 생활 가운데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를 쳐주게 되면
아예 싹이 메말라 버립니다.
우리가 의도한 것과는 달리 그 가지는
그 칼날에 의해 시들어 버리고 아예 문제도 없어지지만
생명 자체도 거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온전케 하는 문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면에서 지체의 생명의 반응이 있을 때
그것을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표현과 함께 나타나는 육, 천연적인 것은
우리의 영에 조금씩 근심을 쌓아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가위를 대자니
그 지체는 생명 자체에
손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한면에서 생명의 나타남을 귀히 여기고
감상해야 함과 동시에
그 지체가 가지치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룸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 생명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 지체를 온전케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능숙한 정원사가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엔 가지가 아주 위험한 곳으로 삐져 나와
바로 가지를 쳐줘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바로 진리에 있어서 많이 어긋나는 경우
우리는 그럴 필요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하간 우리는 생명을 더 귀히 여기고
그러는 가운데 주님과 같이 상대방을 품으면서
사랑의 가위질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능숙한 정원사이지만
우리는 이제 가위를 든 서투른 정원사일지 모릅니다.
그분의 집이 아름답도록
우리가 예쁘게 주님의 정원을 잘 가꾸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실수 투성이인 정원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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