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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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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귀신들리는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는이가 귀신들리는 일에 있어서 이 방법은 완전치 않다. 이는 믿는이가 귀신들리는 원인이 「교외의 사람들」이 귀신들리는 원인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교외의 사람들이 귀신들린 것은 죄 때문이지만 믿는이가 귀신들리는 것은 기만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구원받는 방법은 다시 기만당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귀신들리는 원인이 기만당하는데 있는 상황에서 다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한다면 우리가 처리한 것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다. 이렇게 할 때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보겠지만 장기적인 자유함은 없다. 이는 귀신들린 원인―지위―이 처리되지 않았으므로 귀신은 일시적으로 명령을 듣고 나갈 수 있지만 얼마 안 되어 그 안에 자기의 지위로 인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위를 처리하는 것도 결여되어서는 안 될 수속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말한다면 비록 귀신이 쫓겨난다 하더라도 그 지위가 처리되지 않았다면 귀신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믿는이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었지만,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사람에게 항구적인 자유를 주지 못한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수는 있어도 지위는 내어 쫓을 수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지위는 되찾을 필요가 있다. 기만당한 지위와 피동적인 지위를 전일하고 지속적으로 되찾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항구적인 자유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자기가 악령들에게 지위를 내어 준 일에서 마땅히 지위를 되찾아야 한다. 능동적이지 못하고 자기를 통제하지 못함으로 피동적인 데 떨어져 귀신들리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마땅히 활발하게 그의 의지를 사용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각종 시험과 고난 중에서 흑암의 권세를 반대하고 이로써 당초 그들에게 허락해 주었던 것을 취소시켜야 한다. 피동적임은 점차적으로 임한 것이기 때문에 제거하는 길도 점진적이어야 한다. 믿는이는 자기가 발견한 만큼의 것을 거절할 수 있다. 만일 피동적인 기간이 길었다면 해방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어진다. 하산(下山)하기는 쉽지만 오르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피동적이게 되는 것은 쉬워도 자유하게 되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것은 믿는이의 온 존재의 동역이 요구되는데 이렇게 이전에 그들에게 주었던 모든 지위를 회수해야만이 자유해질 수 있다. 믿는이는 반드시 자기가 어디에서 기만당했는지를 밝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온 존재의 참 모습을 지적해 주심을 진심으로 원하고 사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믿는이들은 그가 악령들에게 준 지위에 대해 듣는 것을 두려워 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말하기만 해도 괴로워 한다. 믿는이가 처리하기를 두려워 하는 그것에 십중팔구 악령들의 지위가 있기 때문에 그는 마땅히 그 일을 처리해야 한다. 믿는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얻어서 자기의 증세와 그 원인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732-734,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