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Eugene
- 조회 수 215
찬양노트 홈페이지의 시작(3)
2004년은 제가 건강상으로 가장 안 좋기 시작하던 '원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자매와 그의 어머니의 중매로 약혼을 하게 되면서 한국 교회들에 대한 많은 상황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자매는 거의 훈련에 가 있고 저는 그 자매의 어머니(장모님)와 이메일로 많은 교통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4년간의 주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주님의 회복에 온 지 2년이 채 안 되었던 시점에서 시작됐던 자비량 전시간 봉사로 인해 안 좋아진 건강 상태에, 장모님과의 이메일 교통을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상황들로 인해 (그 당시 장모님은 아시지 못했지만) 저의 건강 상태는 더 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한 아름다운 자매와 약혼을 했다는 사실마저 없었더라면 저의 상태는 더 안 좋아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과 주권적인 인도하심으로 2005년 4월 그 자매(May 자매^^)가 전시간 훈련을 졸업한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해 7월 뉴질랜드에서 전시간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의 훈련은 건강상의 관점에서 보면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저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 원수의 공격 방면도 있기 때문에 전시간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한 면도 있었습니다. 먼저는 영어권에서,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한국어권에서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의 훈련은 6개월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한 면에서는 May 자매가 아기를 갖게 되어서였고, 또 한면에서는 제가 더 이상 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건강 상태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권에서의 훈련은 그 정도로 충분하다는(?) 주님의 시간표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뉴질랜드에서의 훈련을 마치기 한달 전에 주님이 찬양노트 홈페이지에 대한 구상과 느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훈련 가운데 속이 너무 답답해서 집에만 가면 May 자매와 컴퓨터 게임을 하며(ㅎ) 놀았는데 그 때 예전에 작곡했던 찬양을 듣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시점에 찬양노트 홈페이지에 대한 구상을 주셨는데, 먼저 주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이상을 주시면서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이지 가지의 상태에 달린 것은 아니라는 그림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이상이 저를 격려했고 주님이 주신 느낌에 따라 사이트 이름을 '찬양노트'라고 정하고 예전에 작곡했던 곡들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한학기 마친 다음에 May 자매가 아기를 한국에서 낳고 싶다고 해서 2006년 초에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그 때 사역원을 방문해서 한국 교회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형제님께 찬양노트 홈페이지에 대한 교통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지체들과도 찬양노트 홈페이지에 대한 느낌을 교통 드리면서 몸 안의 교통을 통해 2006년 3월 초에 정식으로 찬양노트 홈페이지가 시작되게 되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