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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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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주님이 특별한 부담을 주셨다고 생각되어 2000년 부터 약 17여년 동안 외국어(특히 영어)로 된 찬양을 번안하는 일에 수고해 왔습니다.
제가 주의했던 번안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적으로 정확하게
2. 가능한 한 회복역에서 사용된 단어를 존중하고
3. 직역을 하되 의미가 어색할 경우 의역을 하고(원 저작자의 의도를 임의로 변경하지 않고)
4. 원곡의 멜로디를 가능한 한 수정하지 않고(정 불가피할 경우 곡의 흐름에 어색하지 않게 최소한으로 수정)
5. 객관적인 어구와 주관적인 어구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될 때 영적인 느낌 안에서 가능한 한 주관적인 어구를 선택하고(시적인 느낌과 표현을 위해)
6. 이 모든 점을 고려하되 영적인 공급이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즉 그동안 찬양노트에 올려진 번안을 주의해서 보셨다면 이러한 점이 가능한 한 반영되도록 애쓴 번안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제 이렇게 번안된 번안곡이 다만 찬양노트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여러 경로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면이 있어서 찬양, 특히 번안곡과 관련해서 전진된 교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찬양노트에서도 찬양노트 악보집 1집이 2016년 3월에 나왔고 또 각지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찬양집이 있으며 또 최근에 한국복음서원에서도 내 마음의 노래 증보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번안곡과 관련하여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 곡에 가장 누림이 되는 하나의 번안이 존재하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방면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한 곡의 방면과 관련해서는 제한받는 면이 필요하고, 가장 누림이 되는 면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참여의 방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두 방면의 조화와 안배가 있을 때 가장 누림이 되는 한 곡의 번안곡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령 찬양노트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이 번안한 곡을 교통을 통해 이곳에 올려 놓을 수 있도록 해 드리는 참여의 방면과 함께 너무 지나치게 확산되지 않도록 번안곡의 경우 곡 하단에 제한의 문구를 붙여 둠으로써 이 두 방면의 조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방면이 조화될 때 우리는 다양한 참여를 통해, 그리고 합당한 제한을 통해 가장 누림이 되는 하나의 찬양(번안곡)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교통의 제한과 한계로 인해 한 곡에 하나 이상의 번안이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때로 이상적일 뿐 현실에 반영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무리하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의 방면을 더 주의하게 되고 가장 누림이 되는 방면을 덜 주의함으로써 외적으로는 하나를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풍성이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치 언약궤가 없는 성막의 상태와 같이).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번안곡에 한하여 어느 시점까지는 하나 이상의 번안곡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열린 마음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한국복음서원에서 출간된 번안곡도 재판이 이루어지면서 수정되거나 더 나은 번안으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한 곡 이상의 번안곡이 둘 다 영적인 느낌과 작품성이 인정되어 마치 별개의 작품처럼 동일하게 몸 안에 받아들여지고 수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번안곡과 관련하여 찬양집 제작에 수고하는 지체들은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긴밀한 교통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통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번안곡 역시 한글 번안은 2차적 저작권이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는 작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찬양집에 찬양노트에 올려진 번안곡을 실으실 경우 새로운 찬양과 마찬가지로 번안곡도 교통을 해 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곡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흡한 작품일 수도 있고 일정 시점에 더 개선하기 위해 보류해 둔 찬양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통이 부족할 경우 찬양노트에 실려진 이전 번안과 새롭게 수정된 곡이 서로 다투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일 이전 번안을 실으시기 전에 충분한 교통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두개의 비슷한 번안이 서로 다투는 경우는 발생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경우는 찬양노트에 실려진 번안을 조금 수정해서 실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그 번안은 새롭게 번안된 곡이 아닌 찬양노트에 올려진 번안곡을 조금 수정한 것이므로 저작권과 관련해서 원 번안에 종속되는 번안이고 그 번안곡과 관련해서는 독자적으로 실으실 수는 없고 곡 사용을 위해서는 원 번안을 한 사람의 승낙이 필요합니다. 그 곡과 전혀 별개의 번안이라면 독자적으로 싣는 것이 가능합니다.
(번안곡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일부 유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가령 2~4마디(?) 정도). 이런 경우 전혀 별개의 번안곡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상을 넘어설 경우 종속된 번안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어떤 경우는 후렴 전체가 유사한데 이런 경우 당연히 종속된 번안곡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적인 면에서 가사를 조금 수정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도 동일성 유지를 위해 원 저작자와의 교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새찬양과 마찬가지로 번안곡에 관하여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며(2차적 저작권) 어떤 면에서는 번안곡에 관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실질적으로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찬양은 다만 권리의 문제만 발생되지만 번안곡은 권리의 문제와 함께 동일성을 유지하는 면에 관한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지에서 찬양 악보집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지체들께서는 새찬양 뿐만 아니라 번안곡과 관련해서도 (2차적) 저작자를 존중해 주고 권리 문제뿐만이 아니라 가장 누림이 되는 하나의 찬양이라는 동일성 유지를 위해서도 긴밀한 교통을 나눠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저는 찬양노트에 실려진 번안곡보다 더 나은 번안을 보았을 때가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저는 지체들이 저보다 더 기능을 발휘해서 더 나은 번안, 더 개선된 번안을 하실 수 있기를 원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몸 안에 풍성과 누림이 더해지기를 원합니다.
저는 저보다 더 나은 번안을 해 주셨을 경우 질투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감상하고 따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표준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정치적으로 무마하지 않고 솔직하게 저의 느낌을 교통드릴 것입니다. 심지어 그것과 전혀 별개의 더 나은 번안을 위해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우리의 수고를 통해 몸 안에 풍성을 더하시고 완전한 하나의 표현을 얻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