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의 풍성을 함께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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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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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질문과 답변은 주의 회복 및 지방교회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질문들에 대해 저의 개인적인 답변을 드린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주의 회복 및 지방 교회들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 형제도 있다는 점에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이 글은 어떤 단톡방에 올린 것을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분들에 대해 실명을 거론한 부분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지방교회에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문제와 비정상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정상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은 타락한 상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님을 닮아가기까지(생명과 본성에서 똑같이 되기까지) 자아, 육체, 타고난 기질 등이 처리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 비정상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정상적이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생명이 성장해야 되고 심지어 성숙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오래 되었는데도 생명이 성장하지 못하고 성숙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고전3:1-2). 이것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생명을 추구해야 되는데 생명이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 긴밀히 따르다 보니 많은 부분이 '지식'이 되었습니다. 실행은 '육체'가 된 면이 있고요. 전부 '다'는 아닙니다.)

 

4. 주의 회복에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타난 현상만을 가지고 주의 회복을 오해하는데 주의 회복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점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5. 비정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은 무엇인가요?

 

생명의 체험입니다. 저는 '속생명의 결여'를 우리의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합니다.

 

6. 어떤 사람은 지방교회가 주의 회복이라는 사역과 분리된 후에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 다른 사역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원론적으로는 맞는 주장이지만 사역과 교회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며 주의 회복은 가장 합당한 사역이고 현재 이 사역을 대체할만한 혹은 결핍을 채워 줄만한 '다른' 사역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사역이 안 보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회복과 분리한 다음에 다시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집회를 사역 집회와 교회 집회로 구분하는 것 정도 이상의 관계 설정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즉 별로 달라질 것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사역이 정상적이라면 그것을 긴밀히 따르는 것은 성경이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떠나 성경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것은 믿는 이에게 생명과 같은 일입니다. 다만 우리가 로고스만 많이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생명의 양식은 아니며 조명과 계시를 받는 레마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필요합니다(마4:4, 엡1:17-18).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이 자라야 되며 생명의 성장과 성숙을 추구해야 됩니다. 이 과정에 주의 회복과 같은 생명의 체험을 강조하는 사역의 도움이 필요하며, 성경을 로고스에서 레마로 보게 하는 데도 역대로 건전한 노선에 있었던 선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저는 '주의 회복'을 이러한 도움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교회에 많은 은사들을 주셨는데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엡4:11). 이러한 은사들을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거절한다면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러한 은사들을 주신 주님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8. 주일 신언집회를 '독서 발표회'라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생명의 체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역을 긴밀히 따르려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체험이 충분히 전제되면 아래의 단계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아침 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과 같은―에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언의 성격을 지니지 않은 다만 작문과 논문과 성경 해석이 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언은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일 때 가능하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다. 그보다 이것은 영감이다. 거기에는 자기 의견이 없다. 그보다 거기에는 영적 통찰력이 있다. 더우기 말하는 동안에는 진부하거나 평범한 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동안 그는 신선한 말씀과 즉각적인 영감을 위하여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이것은 신언의 영적 본질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며 신언에 신선한 계시가 가득하게 할 것이다." (새 길의 유기적인 실행)

 

9. 교회가 전체적으로 생명이 어리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신언 집회에서도 사역을 따르는 것은 좋지만 공급이 안 되고 너무 힘듭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을 때 주님의 길은 '이기는 이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계2-3장). 하락한 교회 생활 가운데 몇 사람의 이기는 이들이 나온다면 시온으로 인해 전체 예루살렘은 공급을 받고 아름답게 됩니다. 몸의 이상 가운데 생명의 성장을 추구해야 되고 심지어 이기는 이가 되도록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 어떻게 하면 생명이 자랄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애정어린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아1:2). 그리고 주님과의 대화 안에서 산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 느낌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느낌이 없지만 이미 주님의 인도 안에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주님은 아마 살아 있는 방식으로 헌신하게 하실 것이며 환경을 안배하시며 우리의 생명이 자랄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통제와 성령의 계시를 통해 그분은 우리 안에서 더욱 거처를 정하실 것이며 우리는 체험적으로 혼과 영의 차이를 알게 되며 직감 안에서 계시를 받고 이것을 해석해서 우리의 말로 내 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단계가 끝이 아니고 직감 안에서 주님의 뜻을 안다고 해도 이것과 일치되지 않는 '나의 존재'를 보게 되는데 이 단계에 이르러야 자아와 육체와 타고난 기질이 처리되는 단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랜 자아와 육체와 타고난 기질의 처리라는 과정을 거쳐 생명의 성장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점에 이를 때 내가 나의 자아와 육체와 타고난 기질이 처리된 만큼 다른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나의 야심이 처리된 만큼 다른 사람 안에 이 야심이 있을 때 그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 안에 주관적인 성향이 있을 때 내가 그것이 처리된 만큼 느낌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목양을 위해 그들의 참된 필요를 알게 됩니다).

 

이제 이 시점에 이른 사람들은 생명의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는데 몸을 보고 몸을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짊어지며(영적 전쟁 포함) 더욱 성숙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가장 누림이 충만한 단계이고 본인이 누리고 싶으면 언제라도 누릴 수 있으며―성경을 보거나 메시지를 봐도 쉽게 공급을 얻고 계시를 얻게 됩니다―교회의 하락된 상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교회의 하락된 상태를 높이 올려 줄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워치만 니 형제님과 같이. 그는 집회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만 있어도 사람들이 공급을 받았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렸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명의 인식>, <생명의 체험 Ⅰ,Ⅱ>, <영에 속한 사람>,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등의 책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1. 지방교회 성도들은 왜 생명이 자라지 않은 걸까요?

 

초기에 입장 회복으로 인해 주님의 누림이 집회만 해도 쏟아졌는데 그것을 생명이 자란 것으로 오판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엘든홀 당시에 주님이 많은 누림과 공급을 쏟아부어 주셨는데 집회만 가면 누림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생명의 체험을 추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오래 되었지만 진정으로 생명의 체험을 추구한 사람은 많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책을 통해 추구한 사람이 온전케 되고 생명이 자란 경우가 더 많습니다.)

 

12. 지방 교회들이 사역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 다양한 사역을 받아들이면 이상적인 지방 교회들이 될 수 있을까요?

 

합당한 사역이라면 한 사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의 사역으로 온전케 되지 못한 성도들이 있다면(바울 사역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한'의 사역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역과 하나된 것이 '종파'여서 요한의 사역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13. 왜 위트니스 리 형제님은 다른 믿음의 선진들을 많이 추천하지 않으셨나요?

 

과거의 사역으로 돌아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유익하지만 빗나가게 하는 요소도 있고 성도들이 그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어떤 성도는 과도하게 영향을 받고 빗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럴 위험이 없는 경우에만 추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앤드류 머레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과거에 대만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이유도 일부 젊은이들이 영성 추구에 빠져서 특히 오스틴 스팍스의 서적을 추구했던 것이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오스틴 스팍스의 사역이 저물어가고 있던 시점에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런 추구로 인해 극히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영적인 사람은 첫째가 니 형제님이고, 둘째가 스팍스 형제님이며, 셋째가 우리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와 사역에 손실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위트니스 리 형제님께 뒤집어씌웠고(그들의 글을 읽는 사람들을 오판하게 함) '영성 추구'를 꺼리는 분위기를 초래했습니다(저는 이것을 가장 큰 손실로 생각합니다). '영성 추구'가 필요하지만 몸의 보호가 필요하고 체험이 있을 때 교만하지 않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영적인 성취가 있을 때 우리를 유혹하여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여기게 합니다. 대만의 그 젊은이들은 여기에 걸려든 것입니다.)

 

14. 그래도 한두 사람의 사역은 종파로 오인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과도하게 따르지 않고 다른 사역들을 받아들인다면 종파적인 요소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사는 사람으로 이끌리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어떤 좋은 교회 생활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그리스도를 사는 사람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은 단연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생명의 노선 안에 있는 그 사역입니다. 지금이라도 <영에 속한 사람>과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과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와 <생명의 인식>, <생명의 체험 Ⅰ,Ⅱ>, <온전케 하는 훈련 Ⅰ,Ⅱ,Ⅲ>과 비교될 수 있거나 대치될 수 있는 사역이 있는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진리 면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해 이렇게 분명하게 밝혀주는 사역이 있는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추구한다면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재벌' 집에서 태어나서 그 가치를 모르시는지요?)

 

15. 생명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소극적인 많은 요소들이 있고(<생명의 체험 Ⅰ,Ⅱ>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으로도 생명을 대체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은사’가 있는 사람은 먼저 생명이 자라는 것보다 ‘일’에 빠지는 것이 쉽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게 생명이 자라는 길을 가는 것보다 ‘봉사’를 하는 것을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야심’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도 있고요. 결국 은밀히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은 소수만이 추구하게 되고, 대다수는 생명이 많이 자라지 않은 상태에서 은사로 봉사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16. 교회에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봉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봉사를 하되 생명이 자라는 것에 더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봉사를 할 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봉사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쳤으되 나의 혼은 파리하게 될 수 있습니다(시106:15).

 

17. 회복을 반대하거나 비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대응하는게 좋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회복이겠습니까? 비평하는 사람들은 비평하는 일을 할 것이고 우리는 힘써 그리스도를 얻도록 추구하면 됩니다. (우리가 비평의 여지를 준 면에 대해서는 주님 앞에서 돌이키고 공과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주의 회복을 오판하게 된 것이니까요.)

 

18. 회복을 반대하는 분들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반대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회복을 찬성하는 분들도 사탄에게 미혹될 때가 많습니다. 하물며 반대하는 분들이겠습니까? 우리가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영적 전쟁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탄에게는 교통의 능력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어떤 사람에게 넣어줄 수 있습니다(요13:2).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떤 것을 생각한다고 여길지 모르나 실상은 사탄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했기에 사탄이 자신의 생각을 넣어 준 것이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단톡방에서 회복을 반대하는 분들 중에 어떤 분은 어느 정도 '영적 체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탄의 유혹으로 이 느낌이 더 강화되었습니다(마치 대만의 그 젊은이들과 같이).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배척했기 때문에 회복을 극심하게 반대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인도자들을 비판하는데 그 이유가 사탄에게 속아 자신이 영적으로 뛰어난 인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영적 망상'이라고 합니다.)

 

19. 한국어를 하는 성도들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싶습니다.

 

개인보다는 단체를 중시하고 '에서'보다는 '야곱'에 가깝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에티켓이 발달돼 있고 겉으로 볼 때 나무랄데 없지만 그래서 변화되기 보다는 자신의 '선'을 유지하기가 더 쉽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보고 변화되기를 더 갈망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인 추구에 약점이 있으며 개인의 변화가 충분히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체를 강조하려다 보니 그리스도의 몸이 그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면이 있습니다(단체적인 '육체'). 한국 사람들은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에 매혹되어 개인적으로 주님을 추구하는 애정어린 관계가 많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개인적으로 추구하면 '독립적이다', '몸을 모른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집회에서 그러라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단체로 추구하고 봉사할 때는 또 단체로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20. Eugene Lee 형제에 대해 궁금합니다.

 

저는 1969년생이고 1992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현재 국적은 뉴질랜드입니다(한국은 외국인으로 와 있습니다).

 

2005년 4월에 May 자매와 결혼을 했고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Andy). 2005년에 뉴질랜드에서 한 학기 훈련을 받았고, 2008년 한국에 와서 2년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들의 실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체험적인 지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들의 문제가 뭘까요? 예를 들면 제가 어느 교회의 봉사자 집회에 간 적이 있는데,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보통 기도를 하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10여 명) 기도했지만 봉사자들 중에 영 안에서 기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좀 극단적인 단면입니다).

 

이런 많은 체험들을 통해 한국 교회들을 관찰했고 제가 쓰는 글들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소망을 가지고 바라보며...

 

21. 유동근 목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말 안타까운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그분의 유튜브 영상을 좀 들어 보았는데 정말 역량이 있으시고 회복을 반대하는 것이 전혀 납득이 안되는 것은 아닐만큼 양심 안에서 정직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사탄은 회복 안에서 정말 역량이 있고 뛰어난 인물을 한 사람 데려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회복의 1000 사람 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복음의 열정이 있고 성경 강해에 대한 탁월한 식견이 있음에도 제가 발견하지 못한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이상'이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는 이것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길이 달라지게 했고 결국 어떤 사람은 주님의 목적을 위해 쓰임받은 반면 어떤 사람은 그렇게 큰 역량이 있음에도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게 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믿기로 유 목사님은 사탄의 미혹이 어떤 부분에서 발생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실 것 같습니다(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분은 아직도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실 것이며 워치만 니를 반대하고 위트니스 리를 반대하는 것이 그분의 양심에 조금도 꺼림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만큼 사탄의 미혹은 아는 것이 쉽지 않고 그분이 결코 부정직해서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상은 비밀한 것이고 생명의 느낌은 너무도 내밀한 것인데, 주의 회복은 이 노선을 따라서만이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외적 느낌들에 연루되어 있었고 그의 역량조차도 생명의 성장이라기 보다는 은사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이상에 따라, 생명의 느낌에 따라 분별하기보다는 자신의 양심과 정직함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판단하기 쉬우며 사탄의 미혹이 이 가운데 스며들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속임당했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유 목사님은 자신이 사탄에게 속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며 이런 말을 하면 전혀 인정을 못 하실 것입니다(이것은 생명의 내밀한 느낌만이 그 미묘한 것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야심'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야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이상 가운데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이 야심이 처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야심이 없다고 보았지만, 사탄이 사로잡을 만큼의 충분한 야심이 있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 사실은 야심이라는 것을 볼 정도의 생명의 빛이 없었습니다. 그는 역량이 있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지만 우리의 정직 안에 얼마나 사탄의 역사가 있을 수 있는지를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좋지만 생명의 느낌은 태양빛과 같다면 양심은 현재의 지식에 제한을 받는 등잔불과 같습니다.

 

그에게 이상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많은 사안들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목적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위트니스 리가 워치만 니에 대해 이 이상으로 인해 1000 퍼센트 하나였던 것처럼 그렇게 따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분봉왕'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길로 인해 주님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일어나 기능을 발휘하는 이 길을 따라가지 못했는데 그러한 흐름에 연루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따라가지 못했고 그의 아름다운 역량들은 주님의 목적을 훼방하는 검은 배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이 길로 들어서게 되면 모든 소극적인 말들은 옳게 들리게 될 것이고 사안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의 지혜를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겔28:17). 그리고 정확하게 그것이 사탄이 하고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답변을 쓰는데도 살짝 사탄의 유혹이 있네요. 정말 그는 간교한 자이고 주님의 빛비춤이 없다면 누가 속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매 순간 주님의 보호와 생명의 빛이 필요합니다. 그의 간계를 드러내고 꿰뚫어 볼 수 있는...)

 

22. 유병헌 목사(유동근 목사의 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부분을 언급할 때 마음이 아픕니다. 회복 2세이고 주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는데, 다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역량이 있는 사람일 때 이것이 아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면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쉽지 않고, 주님의 축복과 오히려 기능을 발휘하지 않음으로 온전케 하는 균형이 필요한데 역량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런 점을 보며 공과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기능을 발휘함 보다 기능을 발휘하지 않음으로 오히려 주님의 축복이 있게 하는...

 

23. 주의 회복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람'을 따르는 경우는 없을까요?

 

이상을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다만 사람을 따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제자들이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이 이상이 있는 옳은 분이셨기 때문에 그들의 따름은 축복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상을 본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을 따른 경우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따름은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유동근 목사와 같은 분들에 의해 사람을 따르는 경우는 어느 시점에 시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쩌면 주님이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회복을 더 정화하시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인수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주님의 역량은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복은 인수가 많아짐으로 역량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순수하게 정화됨으로 더 역량이 있게 될 것입니다(주님의 지상 사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지만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만이 남았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주님도 비밀스럽게 여전히 그분의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분이 보여 주신 이상을 보고 그 이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에 의해...

 

24. 이 세상은 온통 혼란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너도나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밤'에서 어떻게 하면 밝은 빛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워치만 니 형제님이 20여년 동안 감옥에 갇히시고 결국 순교하셨을 때 그 자체가 큰 고난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 또 다른 치열한 열기와 아픔과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 안에서 큰 승리를 하셨지만 이 승리는 한 정권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야욕 속에 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을 사탄이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어두운 밤 가운데 상황을 정확히 보시고 싶다면 편견이 없는 정직한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메시지를 편견이 없는 시각으로 살펴 본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아가서 강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그리스도냐 종교냐> 등을 추천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기 전에 편견이 주입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의 책을 통해 이상을 보고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을 보고 생명의 길을 가는 것과 비교했을 때 그리 중대하지 않은 문제들을 사람들이 중대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고 있는 느낌을 받을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는지 의아해하면서...

 

25. 주의 회복에 대한 이단 시비는 언제나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주님은 목적이 있는 하나님이시며 때로 '소극적'인 것들도 그 안에 주님의 적극적인 목적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은 사탄의 개입이라는 검은 배경 속에 수행되기도 하지만요.

 

이번에 유동근 목사가 워치만 니에 대해 소극적인 책을 낸 것은 가장 큰 '악수(惡手)'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일로 인해 교회와 신앙도 함께 손상을 받을 것 같고요. (한국에―그리고 전 세계에― 워치만 니로 인해 도움을 받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교회와 신앙의 기사를 그대로 믿을만큼 순진하신 분들도 아니구요.)

 

이단 시비가 회복을 정화시키고 순수하게 보존하는 역할도 하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높은 진리로 인해 교만하기 쉬운데 우리의 교만을 낮추시려는 주님의 목적도 있는 것 같고요.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기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는 차츰차츰 하나의 '퍼즐'이 맞춰가는 것이 어느 정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도화선'으로 찬양노트의 찬양이 CD 음질 수준으로 정식으로 녹음됨으로 '불'이 붙여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이 모든 주님의 예비하심의 폭탄들이 이단 시비라는 거대한 담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터질 수 있도록...

 

그리고 도화선에 불이 붙으면 다음의 자료들도 영향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주의 회복의 많은 진리들과 변증글과 함께 '양태론'과 관련하여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 수록될 논문(전시간 훈련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가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영어권 형제님들이 쓴 논문)'이라든가 '신화'와 관련하여 'IVP에서 나온 단행본 책자들(지방교회 측 신학 박사 6명의 형제들의 논문이 포함된)'도... (조만간 한글로 '번역'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6. 사역원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람은 상황만을 보기 때문에 나름의 어떤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주님이 하시려는 일은 그분의 길이 너무 높아서 우리가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사55:8-9).

 

제가 이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갔을 때 주님은 두 가지 그림을 보여 주셨는데 하나는 '사무엘'이 나오기 위해 엘리 제사장이라는 배경이 필요함을 보여 주셨고 또 하나는 '세종 시대'가 오기 위해 태종의 시대가 있어야 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단체적인 '사무엘들'이 나올 것이고 '세종 시대'가 열리리라 생각합니다.

 

더 드릴 말씀이 많지만...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27. 이형규 형제님께 해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개인 카톡을 드린 적도 있고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님이십니다(최근에 중매를 하려고도 해 보았는데). 때로 주님이 하시는 어떤 일은 우리에게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이 있고 마치 주님이 이것을 억제하시려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 가운데 비밀스럽게 우리의 생명이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건강을 주의하시되 나는 나의 사역을 보지만 주님은 또한 나를 더욱 보신다는 것을 본다면 내적인 어려움이 많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엘리'는 극복되어야 하지만 '태종'은 한 면에서 지혜롭게 순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무엘의 한 사람으로서 찬란한 세종 시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8. 거제교회 지체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거제교회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목: 바람이 불 때..

 

주님 바람이 불 때

누구도 손상이 없게 하소서

 

우리의 육체와 타고난 생명은

정화되게 하시고

 

주님의 간증은 보존하시고

강화하소서

 

약한 지체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모든 이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으시는 주여

 

우리 안에 있는 실패를 처리함으로

주님이 우리를 보실 때

그렇게 보이게 하소서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주님의 빛 비추심에 의해

우리 자신의 허물을 처리하게 하소서

 

사람들이 심판하는 것보다

주님의 빛은 더 강하게

우리 자신을 심판합니다

 

이 빛이 우리 모두를 방문하게 하소서

 

주님의 증거와

주님 자신을 위해...

 

29. Eugene Lee 형제는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다 분별이 되는지요?

 

제가 거쳐온 만큼, 제가 처리를 받은 만큼만 분별이 되고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원래 파쇄된 사람은 어떤 일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알아도 잘 말하지 않고 아주 불가피할 경우에만 조금 말하게 됩니다.

 

이 단톡방의 많은 분들은 (주로 글을 많이 써 주시는 분들은) 제 안에 어느 정도 느낌이 다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감상하는 분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 분이 계십니다. 다른 분들은 생명의 체험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체험이 어느 정도 전제되어야 '이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떤 길을 가야 될지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이 있기를 원합니다.

 

30. 가족 관계에 대해 궁금합니다.

 

저의 아내는 May Lee 이고 저와 열두 살 차이입니다. 어렸을 때는 피아노를 조금 치다가 말았는데 주님이 주권적으로 저와 만나게 하셨고 현재 저와 같이 찬송 작곡을 하고 동요 작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학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의 아들은 Andy Lee 이고 올해 고3입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하고 작곡 방면에 재능이 있어서 올해 수능을 보지 않았고 주로 영어 공부와 작곡만 하고 있습니다. 내년 7월 쯤에 뉴질랜드에서 훈련을 받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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