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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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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주님과의 달콤한 사랑에 빠진 후에 워치만 니 형제님의 삶이 제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교파에 있을 당시인데) 예배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한 회사에서 나온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가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지.. 그 인상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야 될 길이 전시간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제게 저의 장래에 대해 하나의 이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992년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후에 식당 일, 와이너리샵 근무 등의 과정을 거쳐
자비량으로 전시간 봉사를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무슨 봉사를 했는지는 비밀^^)
그리고 주님의 인도로 현재 전시간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봉사를 하는 분야가 재정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보니 전시간 봉사인데
지원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을 많이 훈련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전시간 봉사자에게는 원래부터 고정적인 월급 같은 지원은 없는 것이니..
그리고 남는 여가 시간을 사용해서 찬양노트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인도로 작곡의 '작'자도 모르던 사람이 무작정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까지 주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그분의 긍휼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메이 자매 역시 주님의 인도는 전시간입니다. ^^;
주님은 바울 같은 전시간자도 필요하시지만 부부가 함께 주님을 섬겼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사람들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메이 자매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다른 길로(?) 가지 않도록 뒷문을 철저히 닫으셨고
무엇을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도 아르바이트를 구할려고 지난번 바리스타 일을 그만둔 이후로
두 가지를 더 해 보았는데 역시 주님이 다 내려 놓게 하셨습니다.
아마 요즘은 주님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게 하시려는 지도 모릅니다.
표면적으로는 일상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데
안에서는 깊은 불시험의 단계들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가장 많이 느껴질 때
믿음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악보 작업할 것도 계속 밀려 있는데
요즘은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이번의 시험은 이전보다도 더 몸의 지체들과 함께 통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좀 더 열어 드리면서..
보이지 않는 길을 신실히 걸어가는 형제,자매님!
이제껏 신실하게 걸어오셧듯 마지막 관문(?)도 잘 통과하실걸 믿어 의심치 않아요.
많은 격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