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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생명의 인식에 있어서 아홉 째 중점-세 가지 생명과 네 가지 법-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성경에서 지극히 중요한 진리이다. 우리가 우리 내부의 영적인 생명을 분명히 알고 죄 없이 승리하는 생활을 하려면 이 기본 진리에 대한-온전한 이해가 필요하다.

 

Ⅰ. 세 가지 생명

 

A. 세 가지 생명의 정의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생명은 모든 구원받은 사람 안에 있는 세 생명-사람의 생명, 사탄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 안에 오직 한 생명, 즉 부모로부터 얻은 사람의 생명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 안에 사람의 생명 외에 사탄의 생명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로마서 7장 18절, 20절은 사람 안에, 즉 사람의 육신 안에 죄가 거함을 말한다. 여기의 죄는 사탄의 생명을 가리킨다. 이 육신은 사탄의 생명을 담고 있으며,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사람 안에 머물며 자주 영을 거스려 정욕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원받은 후에도 여전히 안에 사탄의 생명을 소유한다.

 

더우기 요한복음 3장 36절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라고 말한다. 요한 일서 5장 12절은 또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하나님의 생명을 말한다)이 있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그의 고유한 사람의 생명과 타락을 통해 생긴 사탄의 생명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 준다.


B. 세 가지 생명의 기원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생기를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셨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아담은 피조된 사람의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 동산의 두 나무, 생명나무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앞에 두셨다. 성경에서 나중에 주어진 계시들에 의하면, 생명나무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는 사탄을 의미하며, 아담은 인류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그 당시 에덴 동산, 즉 우주 가운데에는 세 편, 즉 사람과 하나님과 사탄이 관련된 하나의 상황이 벌어졌다.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자이며, 그가 하나님과 겨루는 그 초점은 사람이다. 사탄과 하나님은 다 사람을 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의 성취를 위해 사람을 원하셨고, 반면에 사탄은 그의 사악한 욕망과 실현을 위해 사람을 원했다. 사람을 얻음에 있어서 사탄과 하나님의 방법은 다 생명을 통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어 그분의 피조되지 않은 생명을 얻고 그분과 연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을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타락한 생명을 얻어 그와 혼합되게 했다.

 

사탄에게 속임을 당한 그날 아담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그 후부터 사탄의 생명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 그를 타락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고유한 원래의 창조된 생명 외에 사람은 또한 타락한 사탄의 생명을 얻었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 나타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 안에 그분의 생명을 두시고, 그분의 아들을 믿고 그분을 영접함으로 사람이 그분의 생명을 얻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래 창조된 사람의 생명과 타락을 통해 생긴 사탄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의 세 생명은 각각 창조, 타락, 구원을 통하여 얻은 바 된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손으로부터 나올 때 우리는 피조된 인간의 생명을 얻었다. 아담을 통과할 때 우리는 타락되어 사탄의 타락된 생명을 얻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구원받아 피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었다.


C. 세 생명의 위치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세 가지 다른, 사람과 사탄과 하나님의 생명은 각각 우리 존재의 세 부분인 혼과 몸과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을 때, 그분은 생기를 사람 속으로 불어 넣으셨고 『사람은 산 혼이 되었다』(창 2:7). 이것은 창조를 통해 얻은 사람의 생명이 사람의 혼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탄에게 유혹되어 타락했을 때, 그는 사탄을 의미하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그의 몸 안으로 섭취하였다. 그러므로 타락을 통해 사람에게 생긴 사탄의 생명은 사람의 몸 안에 있다. 사람이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의 생명을 그분과 함께 가져오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영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구원을 통해 사람이 얻는 하나님의 생명은 사람의 영 안에 있다.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영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혼 안에는 사람의 생명을 가지며, 몸 안에 사탄의 생명을 가진다.

 

세 가지 생명이 위치하는 세 부분을 좀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 부분들의 의식에 관하여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가장 밖에 있는, 물질적인 부분인 몸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하고, 물질 세계를 접촉하는 촉각과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미각의 오감을 가진다. 그러므로 몸의 의식은 세상적인 느낌 또는 물질적인 감각이라 불린다.

 

우리의 가장 안에 있고 가장 깊은 부분인 영은 양심과 직감과 교통을 포함한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관이며 옳고 그름의 원칙에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무엇이 옳고 인정되며 무엇이 그르고 거절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느끼게 한다. 직감은 아무런 수단이 필요없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교통 부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통하고 교통을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접촉하게 하는 것이 교통의 부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영적인 것들을 느끼게 하는, 즉 영적인 세계를 접촉하게 하는 것은 양심과 직감 둘다이다. 이 두 부분의 느낌은 영 안에서의 느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영적인 감각, 또는 하나님의 느낌이라 불린다.

 

영과 몸 사이에 위치한 혼은 우리 내부의 심리적인 부분이며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내포한다. 생각은 사고하고 고려하는 기관이고, 감정은 즐거움과 분노와 슬픔과 기쁨의 기관이며, 의지는 의견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다. 혼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두 부분-생각과 감정-만이 의식을 가진다. 생각의 느낌은 합리성(rationalization)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반면에 감정의 느낌은 좋고 싫음에 기초를 둔다. 우리 혼의 두 느낌은 우리에게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 즉 사람 자신 또는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하며 심리적인 세계를 접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심리적인 느낌, 또는 자아 의식이라 부른다.*

 

(*보통 우리가 「사람의 의식」을 말할 때, 우리는 혼의 감정 안에서 좋아하고 싫어함의 느낌을 의미한다. 이 느낌은 혼의 생각, 몸의 오감, 영의 의식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영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영의 직감으로 인해 약간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것은 주로 혼의 감정에 있어서의 좋아하고 싫어함의 느낌으로 구성된다.)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수치감을 갖게 하셨다. 이 느낌은 이중 기능을 가진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죄가 있음을 증거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막아 준다. 만일 사람에게 수치감이 없다면 마음대로 죄를 범하기 쉽다. 누구든 수치감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부터 더 많이 보호될 것이다. 여자는 수치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속담이 있다. 수치심이 없는 사람은 분명 가장 낮은 부류의 사람이다.


D. 세 가지 생명의 본성과 상태

 

우리가 우리 안에 얻은 세 가지 다른 생명은 각각 그 고유한 기원을 가지고 우리 존재의 세 가지 다른 부분에 따로따로 거한다. 그러므로 이 세 생명의 본성과 우리 안에서의 각각의 상태 역시 서로 다르고 다소 복잡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직후에,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심히 좋았고」(창 1:31) 「정직하였다」(전 7:29). 그러므로 창조된 사람의 생명은 원래 좋았고 정직했다. 그것은 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죄에 대한 의식이나 부끄러움의 의식도 없었다. 그것은 순전하고 단순했다.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한 후, 사람은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 있는 상황을 빚어 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사탄에게 중독되어 생명이 오염되고 타락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집에 있는 나의 자녀들에게 칠판 지우개를 가지고 놀지 말라고 명했다 하자. 내가 집을 떠난 후 그들은 호기심 때문에 그 지우개를 가지고 놀았다. 나는 돌아왔을 때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잘못된 행위는 단순히 가족 규율의 위반일 뿐 아무 것도 그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 번에 내가 독약병을 집에 두고 아이들에게 『절대로 이것을 마시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하자, 내가 집을 비운 후 그들은 그 병이 가지고 놀기에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는-아뿔사, 그 독약을 마신다. 이 순간 그들은 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가족 규율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독이 있는 어떤 것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아담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일어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금령에 불순종했을 뿐 아니라 사탄의 생명을 그 자신 안으로 취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적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그는 원래의 정직하고 좋은 사람의 생명을 소유했을 뿐 아니라 사악하고 타락된 사탄의 생명도 소유한 것이다.

 

온갖 종류의 죄로 가득 차 있는 사탄의 생명은 모든 타락의 씨와 악의 요소들을 담고 있다. 사탄은 사람 안에 살면서 그에게 정욕을 품게 하며(요 8:1) 죄를 범하게 한다(요일 3:8). 그러므로 그의 생명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살아내게 하는 악의 근원이다. 사람이 저지르는 다양한 죄들은 사탄의 생명, 또는 그 안에 거하는 마귀의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이 마귀적인 생명이 사람 안으로 들어온 이래 지금까지, 비록 때때로 사람이 그의 생명을 좇아 사람의 선함을 약간 살아낼 수 있긴 하지만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 마귀적인 생명을 좇아 무서운 악들을 살아낸다.

 

때때로 사람은 매우 점잖을 수 있다. 그는 정말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고 참된 사람의 향기를 발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때에, 화낼 때, 그는 정말 마귀와 같고 악취로 가득하다. 사람이 술취함과 방탕함과 호색함, 도박과 여러가지 범죄에 빠져 있을 때에는 무서운 모습을 지니며 마귀의 냄새로 가득하다. 사람이 그 마귀적인 생명을 살아내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를 속이고 그로 하여금 마귀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람과 마귀의 혼합된 생활을 하게 하는 속에 있는 마귀의 생명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실지적인 내적 상태이다. 사람에게 사람과 사탄의 두 생명이 있고, 본성에 있어서 좋은 면과 또 다른 악한 면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에게는 한편으로는 선하고 정직해지려는 소망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락과 악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므로 여러 세대를 거쳐, 인간 본성의 연구에 종사하는 철학가들은 두 가지 다른 사상을 주창해 왔다. 즉, 하나는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안에 선한 생명과 악한 생명을 다 소유하고 있으므로 우리 안에 이 두 본성이 다 있다.

 

그러나 주께 감사하라! 오늘날 구원받은 우리는 사람과 마귀의 생명을 소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도 소유하고 있다. 타락을 통해 사탄이 그의 생명을 우리 안으로 주입하여 우리를 그와 연합되게 하고 그에게 얻은 바 되게 하며 그의 본성의 온갖 악을 소유하게 하듯이, 하나님 역시 그분의 구출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우리 안으로 두시고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고, 그분에게 얻은 바 되게 하며, 우리로 그분의 본성의 모든 신성하고 선함을 소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타락의 결정적인 요점이 생명이었듯이 구원의 결정적인 요점도 역시 생명이다. 주의 상(床)을 대할 때, 우리는 먼저 생명의 떡을 떼고 그 후에 죄 사함의 잔을 마신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체험할 때 먼저 피를 받고 나서 생명을 받기는 하지만 그분의 구원에 있어서 주된 상징은 생명을 뜻하는 떡임을 의미한다. 피를 뜻하는 잔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떡을 취한 후에 잔을 취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때, 우리 안은 세상 사람들보다 좀더 복잡해진다. 우리는 사람의 정직한 생명과 사탄의 사악한 생명과 신성하고 선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과 사탄과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의미이다. 그 당시 에덴 동산에 존재했던 사람과 하나님과 사탄의 셋으로 구성된 그 상황이 오늘 우리 안에 똑같이 존재한다. 우리 내부 그곳에 사람과 하나님과 사탄-셋 모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는 사탄의 다툼 역시 오늘날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다.

 

사탄은 우리를 소유하려는 그의 사악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와 협력하기를 바라면서 오늘날 우리 안에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 역시 그분의 선하신 기쁘심을 성취하시기 위해 우리가 그분과 협력하기를 바라시면서 우리 안에 운행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 사탄의 생명을 좇아 산다면, 우리는 사탄의 사악함을 살아내어 우리에 대한 그의 악한 목적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좇아 산다면 하나님의 신성한 선함을 살아 내어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그분의 선한 기쁘심을 성취하실 수 있게 한다. 때로 우리가 사탄의 생명을 좇지도 않고 하나님의 생명을 좇지도 않고 독립적으로 우리 사람의 생명만을 좇아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상 우리는 독립적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좇아 살지 않으면 사탄의 생명을 좇아 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아주 다른 세 종류의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생활을 할 수 있다. 매우 친절한 한 형제가 아침에는 정말 사람처럼 보이고, 정오에 그의 아내에게 화낼 때는 마귀를 방불케 하며, 밤에 기도 시간 중에 아내에게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과 그의 아내 앞에 자백할 때에는 마치 하나님 같아 보인다. 그래서 하루 중에도 그는 아주 다른 세 사람처럼 행동하고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황을 살아 낸다. 아침에 그는 사람처럼 친절하고, 정오에는 마귀처럼 화를 내고, 밤에 죄를 처리한 후에 그는 하나님의 모양을 나타낸다. 하루 종일 그의 생활 가운데 사람, 마귀, 하나님이 모두 표현된다.

 

그가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세 가지 생명-사람과 마귀와 하나님-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의 생명을 좇아 살 때에는 사람과 같고, 그가 마귀의 생명을 좇아 행할 때에는 마귀와 같으며,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좇아 행동할 때에는 하나님의 모양을 표현한다. 우리가 좇아 사는 그 생명이 우리가 살아내는 바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한 사람 안에 세 가지 다른 생명-사람의 창조된 생명, 사탄의 타락된 생명,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생명-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세 가지 생명을 모두 소유했지만 세 가지 다른 발생으로 인해 세 번의 다른 때에 그 생명들을 얻었다. 첫째로 우리는 창조의 때에 창조를 통해 사람의 창조된 생명을 얻었고, 둘째로 사탄과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접함으로 말미암아 타락 중에 사탄의 타락된 생명을 얻었으며, 세째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았을 때에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생명을 얻었다. 이 세 가지 사건들-창조, 타락, 구원-이 우리 안에 발생한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본성에 있어서 각각 생명이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사탄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의 세 생명을 얻었다.

 

이것을 보고 알 때, 우리는 생명의 길에 관해 분명해질 수 있다. 사람과 사탄과 하나님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생명이 동시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데 우리는 어느 생명을 좇아 살아야 하는가? 사람의 생명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명인가, 사탄의 생명인가? 우리가 좇아 사는 그 생명이 우리가 살아내게 될 생명이다. 여기에 생명의 길이 놓여져 있다.


Ⅱ. 네 가지 법

 

구원받은 우리 안의 세 가지 생명은 각각 하나의 법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세 가지 생명이 있을 뿐 아니라 세 가지 생명에 속하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이외에도 우리 밖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안과 밖에 모두 네 가지 법이 있다. 이것은 로마서 7장과 8장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바이다.


A. 네 가지 법의 정의

 

로마서 7장과 8장의 중심 주제는 법이다. 먼저 6장에서 사도는,『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 함이라』고 말한다.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는」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도는 7장과 8장에서 법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한다.

 

7장은 『형제들아(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함으로 시작한다. 다시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으니』(6절)라고 말하고, 뒤에서 그는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라』(7절)고 말한다. 다시 『나는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노라』(22절)고 말한다.

 

이들 모두는 구약의 법과 율법을 가리킨다. 마침내 그는 『내 지체들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나의 생각의 법과 싸워 나의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 안으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도다』(23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나 자신이 노예로서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8장에서 그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2절)고 말한다. 이 구절들에서 사도는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연관된 네 가지 다른 법에 관해 전부 말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법」(7:22, 25), 즉 구약의 율법으로서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요구들을 밖으로 말해낸다. 둘째, 「생각의 법」(7:23)은 우리 생각 안에 있으며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 싶어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세째,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7:23)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한다. 우리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이 법의 기능이 우리 몸의 지체들 안에서 표현됨으로 인하여 그것은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이라 불리운다. 네째, 「생명의 영의 법」(8:2)은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 안에 살게 한다. 이 법이 나오는 그 영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생명과 우리 사람의 영으로 구성된 조화(mingle)된 영, 생명의 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생명의 영의 법」이라 불리운다. 더우기 이 영은 생명을 담고 있고, 생명에 속하며, 생명이기 때문에 이 영의 법은 「생명의 법」이라 불리운다. 네 가지 법 중에서 한 법-하나님의 법-은 우리의 밖에 있는 반면, 나머지 셋-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 몸 안에 있는 죄의 법,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 안에 있다.


B. 네 가지 법의 기원

 

네 가지 법의 기원은 각각 다르다. 하나님의 법은 돌비에 쓰여져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셨다. 나머지 세 법은 먼저 우리가 언급한 세 가지 생명으로부터 나왔다. 모든 생명에는 법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법이 항상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생명은 항상 하나의 법을 소유한다. 우리 안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생명이 있으므로 그 세 가지 서로 다른 생명에 상응하는 세 가지 법이 있다.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창조된 선한 생명으로부터 나오며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때가 아닌 태어날 때에 얻어진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로 인한 자연적인 증여물이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선물이 아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생각과 사고 안에는 타고난 기호나 선을 행하고 우리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람들에게 호의적이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자 하는 원함과 우리 스스로 개혁하려는 희망과 진보하려는 결심이 허다하게 있었다. 선을 행하려 하고 진보하려는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것들은 또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도 이 선의 법이 이미 우리 안에 있었음을 증거한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서 7장 18절(내가 내 속에...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에 기초하여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나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 안에 아무런 선한 것이 없으므로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우리의 원래 창조된 생명으로부터 나올 리가 없으며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서 7장 18절을 주의깊게 읽는다면 이 결론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우리 안에 아무런 선한 것이 없다고 말할 때 우리 육신 안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1, 23, 24절의 문맥에 의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육신은 우리의 타락되고 변질된 몸을 가리킨다.

 

우리의 타락되고 변질된 몸, 즉 육신 안에는 아무런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타락된 존재 안에 선한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장의 뒷부분에서 우리 타락된 존재 안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우리의 생각 안에 선의 법이 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의지와 생각은 둘다 우리의 혼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타락되고 변질된 몸 안에는 아무런 선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 혼의 생각과 의지 양자 안에는 타락 후에도 선함의 요소가 있다. 이 선함의 요소는 자연히 우리의 창조된 선한 생명에 속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우리의 원래 창조된 생명에 속하고 우리가 구원받기 전 곧 우리의 출생시에 존재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창조된 선한 생명은 타락을 통하여 사탄으로 말미암아 부패되었으므로 그 선함의 요소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부정확하다. 예를 들어, 신맛의 요소를 꿀물이 든 컵 속으로 가미하면 단맛을 손상시키지만 단 요소를 없애지는 않는다. 비록 사람이 사탄으로 인해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의 선함의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 안에 있는 창조된 선함의 요소가 사탄으로 인해 부패되어 고칠 수 없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무(全無)한 상태로까지 부패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우리가 유리 컵을 박살낸다면 그것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지만 유리의 요소는 여전히 남는다. 금 막대기 한 조각이 오물통에 던져질 수는 있지만 금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록 부모님에 대한 우리의 공경, 형제애, 성실, 진실, 예의 바름, 도덕성, 수치감 등이 다소 불순하고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요소들은 진심에서 우러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우리의 선한 요소들이 오염되기는 했지만 파괴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비록 그 요소들이 매우 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의 현인들과 철학가들이 사람 안에 몇몇 「뛰어난 미덕」과 「타고난 지각」 등이 있음을 발견하고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결론 내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 타락된 존재 안에 선함의 요소와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고 싶어하는 법이 있으므로, 사람의 본성에 관한 이들 철학가들의 발견은 과연 옳다.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은 사탄의 타락되고 악한 생명으로부터 나왔다. 우리는 앞에서 범죄-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를 통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사탄의 생명이 사람 안으로 들어왔음을 말했다. 사탄의 이 생명 안에 악의 법, 즉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이 포함되어 있다. 사탄의 생명은 악하므로 그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그 법은 자연히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게 한다.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과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생명과 함께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영과 조화되어 생명의 영이 된다. 이 생명의 영의 생명 안에 생명의 영의 법 또는 생명의 법인 한 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의 법을 두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을 두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은 생명이지 선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분은 우리 안에 생명의 법을 두신다. 선의 법은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창조를 통해 주어진다. 우리 안에 있는 선을 행하는 요소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 안에 그분의 생명을 두신다. 이 생명 안에는 생명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은 우리의 구원의 때에 얻은 바 되고 하나님의 생명의 구원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법의 기원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속하며,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와 사람에 속하며,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은 사탄의 생명으로부터 나와 사탄에 속하며, 생명의 영의 법은 생명의 영으로부터 나와 영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C. 네 가지 법의 위치

 

네 가지 법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지려면 우리는 그들 각각의 위치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은 돌비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 밖에 있다. 선의 법은 우리의 생각, 즉 우리의 혼 안에 있다. 선을 행하는 법이 우리의 혼 안에 있으므로 이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그 법 역시 물론 우리의 혼 안에 있다. 이 법의 기능은 특히 혼의 생각 안에서 표현된다. 그러므로 이 법은 「생각의 법」이라 불리운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 안에는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선의 법, 선한 인간 본성이 있다.

 

죄의 법은 우리의 지체들, 즉 우리의 몸 안에 있다. 사람은 타락 중에 그의 몸 안으로 지식의 나무 열매를 받아들였다. 그런고로 사탄의 악한 생명이 우리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사탄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죄의 법 역시 우리의 몸 안에 있다. 이 법이 우리의 몸 안에 있고 그 몸이 지체들로 구성되었으므로, 이 법은 우리의 지체들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몸 안에는 사탄과 사탄의 생명과 사탄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죄의 법과 사탄의 악한 본성이 있다. 사탄과 사탄의 그 악한 것들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 섞인 사실로 인해 몸은 변질되어 타락한 육신이 되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하나님의 생명과 함께 생명의 영이 우리의 영 안에 거하므로 생명의 영으로부터 나온 법 역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이 법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것의 기원이 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위치 역시 영이다. 그런고로 그것은 전적으로 영에 속하며 몸이나 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 안에는 하나님,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의 영으로부터 나온 법, 그분의 생명의 본성이 있다.


D. 네 가지 법의 본성과 기능

 

우리 안팎의 이 네 가지 법의 본성과 기능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규칙들로 구성되며, 그 본성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우리 밖에 있는 이 법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그분이 의롭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규칙들을 좇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을 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창조된 선한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왔으며, 사람의 선한 본성을 내포하고,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의 본성에 꼭 맞는다. 이 법이 우리 안에, 즉 우리의 생각 안에 선을 행하려는 원함을 일으킨다. 특히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에게 선해질 것을 요구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이 선의 법은 선을 행하기를 지향하는 경향을 우리에게 준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은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기를 기뻐한다. 이것이 사도가 『나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고 말한 바이다.

 

우리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은 우리 육신 안에 있는 사탄의 악하고 타락한 생명으로부터 나왔으며 사탄의 악한 본성을 담고 있다. 사탄의 악한 생명은 우리의 육신 안에 현존하는 「악」이고 우리 안에 거하는 「죄」이다(롬 7:21,20). 그것은 「죄의 법」이므로 이 악한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 이 법은 우리의 육신으로부터 그 천연적인 힘을 행사하여 악을 행하고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을 거스려 싸운다.

 

우리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우리에게 선을 행하려는 원함을 줄 때, 이 죄의 법은 그것을 거스려 일어나 싸워 우리를 사로잡아간다(롬 7:23).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려 하거나 하나님의 법의 선한 요구를 만족케 하려는 우리의 갈망을 실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로마서 7장 21절로 24절에 기록된 대로 우리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하여 온갖 종류의 죄를 범하여 사망을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나 우리 자신의 의지력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우리를 자극하는 죄의 법에 의해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타락된 존재 안에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법은 창조된 선(善)의 생명으로부터 나와 우리 혼의 생각 안에 작용하여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원함을 일으킨다. 다른 한 법은 사탄의 타락되고 악한 생명으로부터 나와 우리 몸의 지체들 안에 작용하며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한다. 우리의 생각과 지체들 안에서 모순된 일들을 행하는 이 두 가지 정반대되는 법은 우리 안에서 서로 거스려 싸운다. 그 결과 대개 죄의 법이 선의 법을 이겨낸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우리가 행하기 원치 않는 악을 행하도록 강요당한다. 이것이 중국 사람들이 이성과 정욕의 싸움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성은 우리 창조된 생명 안에 있는, 본래 타고난 선을 행하는 요소이다. 정욕은 우리 타락된 몸 안에 거하는 죄, 또는 우리 육신 안에 있는 악이다. 이성이 부분적으로 우리 사람의 양심으로부터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 안에 작용한다. 그런고로 「이성」의 완성으로 인한 선함은 지식으로부터 나오거나 지식을 통과한다. 정욕이 우리 타락된 사람의 본성에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몸의 지체들 안에 작용한다. 그러므로 정욕의 결과인 악은 정욕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식에 있어서 강한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좀더 있는 반면, 좀더 격정적인 사람은 쉽게 악을 행한다. 다른 말로 해서,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선은 생각 안에 있는 지식으로부터 비롯되거나 생각 안의 지식을 통과하는 데 반하여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악은 지체들 안에 있는 정욕의 결과이다. 우리 생각 안에 있는 이성이 유리한 위치를 얻을 때,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한다. 지체들 안에 있는 정욕이 더 나은 위치를 얻을 때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저지르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싸움이 갈라디아서 5장에 언급된 싸움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갈라디아서 5장은 영을 거스려 싸우는 우리의 육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성령을 얻은 후에만 일어난다. 그러나 두 법의 싸움은 사탄의 타락되고 악한 생명과 창조된 선한 생명 사이의 싸움에 관계되어 있고 이 싸움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존재하는 내적 싸움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세상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싸움이다.

 

죄의 법으로부터 나오는 이 「죄(Sin)」는 사탄의 생명이므로 살아 있다. 대문자로 표시된 「죄(Sin)」는 그것이 인격화되고 유일함을 의미한다. 우주 가운데 오직 하나님이 계시고 오직 한 죄(Sin)가 있을 뿐이다. 죄는 하나의 특별한 용어이고 유일한 대상이다. 죄는 사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부터 8장은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주관할 수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반대하고 죄의 노예가 되게 하며, 우리 안에 거하며 우리를 압도하여 우리가 원치 않는 악을 우리에게 행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 밖의 많은 죄들(sins)은 단지 우리 안의 유일한 죄(Sin)의 작용으로 인한 행위들일 뿐이다. 이 유일한 죄는 죄들의 뿌리요 어미다.

 

죄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밖으로 죄를 짓게 하는가? 우리는 죄가 우리의 몸 안에 거함을 보아 왔다. 그러나 자극하는 기관은 의지이지 몸이 아니다. 사람의 혼에 속하는 의지는 죄의 지배를 받아 죄의 지시에 복종하며 사람의 몸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므로 비록 죄가 우리 몸 안에 거하기는 하지만, 그 손상 작용은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몸에서 시작된 그것은 우리의 혼과 영에 손상을 입게 하며 우리 전존재가 타락되기까지 죄의 독성을 발산해 낸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17장에서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1장과 마가복음 7장은 또한 온갖 종류의 죄가 사람 안에 있다고 밝힌다. 이 성경 구절들은 사람이 안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타락되었고 죄들로 가득함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의 혼은, 생각은 악하고 감정은 오염되고 의지는 반역적이며, 심지어 그의 영도 어두워졌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 안에 있는 죄의 활동의 결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우리 안에 사람의 법과 사탄의 법, 선의 법과 악의 법, 두 법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 있음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이 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영으로부터 나오므로 하나님의 피조되지 않은 신성한 생명으로부터 온다.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생명들 중에서, 신성하고 영원한 본성에 관한 한 오직 하나님의 생명만이 「생명」이다(이것은 1장 「생명은 무엇인가?」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은 「생명」이다. 생명의 영의 법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이 「생명」이듯이 그 본성도 「생명」이다. 이 법은 그 근거가 되는 생명으로 인해 「선」하거나 「악」한,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법과 같지 않다.

 

성경의 계시에 따르면, 생명과 선은 서로 다르다. 여기 세 가지 중점이 있다. 첫째로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인 반면, 선은 사람의 생명의 본성이다. 둘째로 생명은 선하지만 선이 반드시 생명인 것은 아니다. 세째, 에덴 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는 생명과 선이 서로 명백히 다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생명은 선도 악도 아니다. 생명, 선, 악은 서로 다른 세 가지 독립된 것들이다.

 

우리는 생명과 선이 같지 않다는 것뿐만 아니라 선과 선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이 있고 또한 사람의 선이 있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을 담고 있다. 사람의 선은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오며 단지 사람의 선한 본성만을 담고 있다. 에베소서 2장 10절과 디모데 후서 2장 21절에 언급된 선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 살아내는 선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선이고 하나님의 선이다.

 

마태복음 12장 35절, 로마서 7장 18, 19, 21절과 9장 11절에 언급된 선은 우리가 우리 고유의 생명을 좇아 살아내는 선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선이고 사람의 선이다.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선은 「생명」의 본성이나 하나님의 요소가 없는, 단지 사람의 선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선만이 선일 뿐 아니라 「생명」의 본성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참된 요소를 소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과 선이 서로 다르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람의 선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생명 본성은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는 사람의 선은 자연히 하나님의 생명과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생명 본성을 담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생명과 다르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본성을 담고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내도록, 즉 하나님의 선을 살아내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이들 법은 또한 그 힘의 정도에 있어서도 서로 다르다. 우리는 법들이 그들 각각의 기원이 되는 대상의 힘의 정도에 따라 세기에 있어서도 다양함을 안다. 선의 법은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왔는데, 사람의 생명은 가장 연약하다. 그런고로 선의 법이 선을 행하는 힘 역시 가장 연약하다. 죄의 법은 더 강한 사탄의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그런고로 죄를 짓는 이 법의 힘은 선의 법이 선을 행하는 힘보다 더 강하다. 그것은 우리를 선을 행함에 있어 무력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게 한다. 생명의 영의 법은 가장 강한 생명,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온다. 그런고로 이 법의 힘 역시 가장 강하다. 그것은 우리를 죄의 법에 복종하여 죄를 범하는 것에서 지킬 뿐만 아니라 생명의 영의 법 자체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자연스럽게 살아 낼 수 있게 한다.

 

역대로 철학가들은 도덕성을 개발하거나 행위를 개선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주창해 왔다. 사실상 그들이 주창해 온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원래의 선을 되찾거나 재활동시키기 위한, 이미 타락된 몸과 혼에 근거한 사람의 지식과 자기 의지와 자기 노력을 통한 작용이다. 이 모든 것은 죄의 법의 본연의 힘을 이겨낼 수 없다. 사람의 힘은 제한되어 있는 반면 법의 힘은 지속적이다. 사람이 애쓰는 것은 자기 노력인 반면 법의 힘은 자동적이다. 언젠가 그의 힘은 고갈되고 법의 힘이 다시 그 자체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출 방법은 우리를 에워싸는 죄를 처리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외적 몸에 역사하는 것도 아니며, 선을 행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하여 우리의 몸과 우리 영 사이에 있는 혼에 역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요소를 우리 안으로 더하시어 생명의 강력한 힘을 가져 오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 즉 우리의 영 안이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죄의 법 안에 죄 짓는 능력을 이겨내기 위하여 죄의 법을 정복할 만한 법을 이용하여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들에 퍼지면서 우리의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진전해 나아가신다. 나아가 우리는 전에 선의 법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낼 수 없었던 하나님의 법이 요구하는 선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명의 영의 법으로부터 나온 생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생명을 살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관계된 네 가지 법, 즉 우리 밖에 있는 한 법과 우리 안에 있는 세 법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우리 밖에 있는 한 법은 하나님의 법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세 법 중 한 법은 우리 혼 안에, 한 법은 우리의 몸 안에, 한 법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창조된 선한 사람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우리의 혼 안에 있는 법은 선하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원함을 우리에게 일으킨다. 타락되고 악한 사탄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우리 몸 안에 있는 법은 악하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 피조되지 않은 신성한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우리의 영 안에 있는 법은 신성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살아 내게 한다.

 

우리의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거룩함, 의로움, 선함의 요구를 부여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표한다.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은, 하나님의 법의 거룩하고 선한 요구를 만질 때 그 요구들을 실행하기 원하고 실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은,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우리 밖의 하나님의 법의 거룩하고 선한 요구들을 이행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틀림없이 반대하고 저항하며 대개는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을 이겨낸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이행함에 무력해질 뿐 아니라 우리 밖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한 요구들을 어긴다. 이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이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 우리의 영을 좇아 산다면 우리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여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살아내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한 요구들을 이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신성한 표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한 예로,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은 탐하지 않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나님의 법의 이 요구를 만질 때,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은 그것을 이행하고 싶어하며 더이상 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때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은 반대하여 일어나 내부에서 우리로 하여금 탐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탐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의 법을 이행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많이 작정하고 결정하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제거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탐심은 더욱더 우리 안에 무성해진다. 밖에 하나님의 법의 요구로 인해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선을 행하려 할 때마다,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은 즉시 우리 안에 악을 작용케 하여 우리의 선한 생각을 거스려 싸우게 한다. 더우기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거의 모든 교전에서 선의 법은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 진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라!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보다 더 강하고 우리를 죄의 법에서 구출하여 해방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을 통한 우리의 고투와 투쟁을 멈추고, 대신 생명의 영의 법을 좇아 행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이 자극하는 탐욕으로부터 구출될 것이다. 우리는 탐하지 말라는,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이행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빼어난 거룩함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은 우리 위에 특정한 요구들을 두며,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은 즉시 그것을 이행하고 싶어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법-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과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의 사이에서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은 우리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원하는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고 방해한다. 우리의 몸이 우리의 혼을 에워싸듯이 몸 안에 있는 죄의 법도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을 에워싸며, 죄의 법은 선의 법보다 더 강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선의 법이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이겨 그 에워쌈을 격파하고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이행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모든 것보다 가장 강하다. 그러므로 그 법은 우리의 몸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이겨내고 그 법의 삼킴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충분히 이행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우리에 대한 이 네 법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또다른 한 예를 사용할 수 있다.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은 마치 우리에게 구애하는 훌륭한 한 남자와 같다. 반면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그의 구애에 응하려는 정숙한 한 숙녀와 같다. 그러나 우리의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은 항상 그 숙녀를 좇아다니며 그녀와 그 남자 사이에 말썽을 일으키고자 하는 한 악한과 같다. 그는 이 숙녀가 그 남자의 구애에 응하려는 것을 알 때마다 그녀를 납치하여 강제로 그녀가 그녀 자신의 뜻대로, 그녀 자신의 원함대로 행하지 못하게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늘로부터 온 한 천사에 비유될 수 있는,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악한으로부터 숙녀를 구하여 그녀로 하여금 그 남자의 구애를 실행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원함은 실현된다. 결국 그녀는 하늘로부터 온 이 천사가 사실은 그 남자가 분장한 분임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이 천사는 그녀로 하여금 그 남자의 구애를 이행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그 자신의 갈망을 그녀로 하여금 실현하게 한다.

 

이 예에서 우리는 비록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위에 요구들을 둔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그 요구들을 실행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생각 안에 있는 선의 법은 밖에 있는 하나님의 법의 요구들을 이행하고 싶어하지만 우리의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을 이겨낼 힘이 전혀 없다. 게다가 죄의 법은 항상 선의 법을 반대하고, 선의 법이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이행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방해하고 그 원함을 실행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강력한 힘과 함께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출인,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생명의 영의 법은 죄의 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의 모든 요구들을 실행하고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살아낼 수 있게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생명의 영의 법을 좇아 산다면, 우리는 우리의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부터 구출되어 자동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결론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구출은 사람의 개혁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 근거가 다르다. 사람의 개혁은 원래의 사람의 선에 근거하는 반면 하나님의 구출은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영, 즉 생명의 영에 근거한다. 또한 그 방법이 다르다. 사람의 개혁은 사람의 힘을 발휘하고 우리의 신체에 심한 처리를 하여 격정을 눌러 사람 안에 선을 초래하는 방법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구출은 그분의 영과 그분의 생명을 우리의 영 안으로 주입하여 우리의 영을 소생케 하는 방법으로 말미암는다. 그 때 새롭게 하는 역사가 우리의 영에서 시작되어 먼저 우리의 영의 다양한 부분들을 새롭게 하고 그런 연후에 우리의 혼의 다른 부분들을 새롭게 하며, 마침내 물질적인 몸까지 새롭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도 다르다. 사람의 개혁의 결과는 단지 사람의 가장 높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에게 신성한 하나님의 본성의 신성한 표준을 살아내게 하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구출의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살아내어 「하나님-사람들(God-men)」이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구출은 우리를 선한 사람들(good-men)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사람들(life-men)로 만든다. 우주 가운데에는 「하나님-사람들」과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의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구출은 우리를 악한 사람들이나 선한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명-사람들」로 만든다.

 

세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출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며 하나님의 구출은 우리로 「생명-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이시다. 「생명-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되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산다는 것은 막연한 교리이다. 하나님 안에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영의 법 안에 살아야 한다. 생명의 영의 법은 영 안에 있으므로 이것은 우리에게 영 안에 살 것을 요구한다. 생명의 느낌은 생명의 영의 법의 느낌이므로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생명의 느낌 안에 살 것을 요구한다. 만일 우리가 영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생명의 영의 법 안에 사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살아내는 것은 생명이며 우리는 「생명-사람들」이 된다.

 

네째, 하나님의 구출의 목표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다. 우리가 생명의 영의 법을 복종하여 하나님 안에 살 때, 하나님 또한 우리 안에 사시며 그분과 우리는 둘이 하나로 완전히 연합될 때까지 실제적으로 조화(mingle)된다.

주관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요점이 더 있다. 첫째로, 우리는 내적 느낌을 접촉해야 하는데, 이것은 내적 느낌을 복종함을 뜻한다. 둘째로, 우리는 교통 안에 살아야 한다. 교통은 생명의 흐름이다. 교통 안에 사는 것은 생명의 흐름 안에 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점은 우리로 하여금 실지적으로 생명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세 가지 생명과 네 가지 법에 관한 이 장의 목적은 우리에게 이 요점을 얻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실지로 내적 느낌을 접촉하고 교통 안에 산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1) 죄로부터 해방될 것이고 (2) 우리가 행할 수 없는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3) 하나님의 법을 실행할 것이고 (4)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 낼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표현하는 「하나님-사람들」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구원의 목적이며 생명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내포하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
[생명의 인식, "세 가지 생명과 네 가지 법",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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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혼의 잠재력 2 청지기 2012.05.03 1963
160 예수의 인성의 풍성한 공급 청지기 2012.05.03 1675
159 소제의 향료들 청지기 2012.05.03 1745
158 하나님의 요구들과 하나님의 양식 청지기 2012.05.02 1432
157 회막과 모든 제물들 청지기 2012.05.02 1521
156 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청지기 2012.05.02 1644
» 세 가지 생명과 네 가지 법 청지기 2012.05.02 1479
154 영과 혼의 분별 청지기 2012.05.02 2003
153 부모 청지기 2012.04.30 1474
152 부부 청지기 2012.04.30 1488
151 청지기 2012.04.30 1092
150 금욕주의 2 청지기 2012.04.30 1227
149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 청지기 2012.04.24 1346
148 그리스도의 승리로 그분을 전람하는 집회 청지기 2012.04.24 1460
147 영의 정상적인 상태 청지기 2012.04.24 1472
146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 청지기 2012.04.24 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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