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출애굽기 15:13, 17, 신명기 12:11, 시편 73:16, 17, 고린도 전서 14:26, 히브리서 10:25

 

밖으로 보기에는 출애굽기, 신명기, 시편에서 나오는 위의 구절들이 집회의 문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 구절들은 집회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집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상황으로 인도되었다. 나는 고린도 전서 14장 26절에 관한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나를 가르친 형제회는 이 집회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매우 이름이 나 있었다.

 

형제회는 모이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발견했다. 좋은 의미에서, 지나간 세기에 그들은 고린도 전서 14장 26절을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의 봉사를 혁신시켰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구절을 매우 잘 알았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많이 가르쳤다.

 

나의 고향에서 교회생활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주로 고린도 전서 14장 26절에 근거하여 집회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서 10장 25절에 있는 권면을 알고 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두 구절은 집회의 문제에 대하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보편적인 것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나는 이 구절들이 실제적으로는 집회에 대한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가 아는 바와같이 출애굽기 15장은 구출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승리의 찬양에 대한 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학정으로부터 구출되고, 홍해를 건너고, 모든 애굽 군대들이 그 바다의 깊은 곳 아래 빠졌을 때, 그들은 주님께 찬양을 드렸다.


하나님이 안내하신 목적지

 

13절에서는,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거룩한 처소로 안내하시나이다』.(흠정역 참조)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안내하시는 목적지가 그의 거룩한 처소라는 것을 주목한 적이 있는가? 그분은 우리를 이 목적지로 안내하신다.

 

그분은 자기의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며, 그들을 그 목적지, 즉 그분의 거룩한 처소로 안내하신다. 우리는 이곳이 하나님의 거처임을 알고 있다. 처음에 그것은 회막이나 장막이었다. 결국에 그것은 성전이 되었다. 그것이 장막이든 성전이든, 그것은 하나님의 거처요 그분의 거룩한 처소였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목적지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목적지, 즉 그의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시며 안내하신다.


하나님의 거처

 

여러분은 하나님의 처소가 그의 구속된 백성의 모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가?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용어가 있다. 즉 회막(會幕)이 그것이다. 막(幕)은 하나님의 거처를 의미하며, 회(會)는 물론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을 언급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 곧 하나님의 거처임을 가리킨다.

 

구약에서는 그 그림이 아주 선명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처임을 묘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표에는 하나님의 모인 백성의 중심으로 회막이나 장막으로 예표된 하나님의 거처가 있다. 그 회막 주위에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 있다.


부르심을 받아 나온 무리의 성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처소가 바로 교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헬라어에 의하면 교회, 즉 에클레시아(Ecclesia)는 일종의 모임이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아 나온 무리의 모임, 혹은 성회(聖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나온 무리들이 함께 모일 때, 이것이 교회다. 교회는 바로 단체적인 사람들의 집회요, 신자들의 모임이다.


실제적인 면의 교회

 

신약의 가르침에 따를 때, 어떤 지방의 성도들이 모이지 않고 모임도 없이 교회가 될 수 있었으리라 믿는가? 믿는이들이 그들의 지방에서 함께 모이지 않고는 실제적인 교회생활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한다. 실제적인 교회생활은 바로 어느 지방에서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다. 여러분이 헌팅톤비취(Huntington Beach)에 살고 있으나 함께 모이지 않는다면, 물론 그 도시에는 많은 성도가 있으나,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모두 모일 때 교회가 실제적이고도 실지적인 것이 된다. 이것이 에클레시아(Ecclesia)이다. 에클레시아는 모든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성도들이 함께 오는 것이 모임이다. 여러분은 이 모임이 하나님의 처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헌팅톤비취에 있는 장막이다. 그것이 바로 장막 주위에 모이는 모임인 교회다.

 

그러므로 교회는 곧 회막이다. 나는 교회가 회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막(幕)은 하나님의 거처를 의미하며 회(會)는 모든 성도들의 모임을 나타낸다. 출애굽기 15장 13절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의 집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들은 구속을 받았다. 구속받은 후에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그들을 집회로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집회로 안내 하신 것이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안내하심

 

여러분은 출애굽기 15장 13절에 두 개의 서술어가 쓰였음을 주목한 적이 있는가? 첫째로는 주님이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말한다. 다음에는 주님이 그들을 안내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인도하심과 안내하심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약 이십 년 전에 내가 엘든흘(Elden Hall)에 있을 때 누군가가 『주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안내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매우 의미깊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님은 먼저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음에 우리를 안내하신다. 예표에 나타난 그림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에는, 항상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다. 그것이 인도하심이었다.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멈추어 있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님은 그들을 인도하시며 동시에 안내하시기도 했다. 그분은 그들과 함께 계셨으며 그들 가운데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여행길에서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시며 안내하시고 있다.

 

1958년에 내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한 여행 안내원을 사용했다. 그는 안내자일 뿐 아니라 인도자였다. 우리가 성전이나 다른 장소를 갈 때, 그는 인도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즉시 그는 안내자가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돌이켜서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걸으며, 우리와 이야기 하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 그는 안내자였다. 그는 인도하는 자였으며 또한 안내자였다.

 

인도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반적인 것이다. 안내하는 것은 어느 정도 특별한 것이다. 여행 안내자가 인도할 때에는 다만 앞장서며 우리 앞에서 걷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는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만지지 말아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는 안내자로서 우리에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우리에게 일반적인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 일반적인 면에서 인도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 우리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결국 그분이 그분의 능력으로 그들을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신 것은 그분의 안내하심을 인해서였다. 인도하심은 다만 길에서 백성들의 앞장을 선 것이지만 안내하심은 그들을 어떤 지점, 즉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데리고 간 것이다. 그 처소가 바로 모임이다. 그것이 집회이다. 그러므로 구속 후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안내하심은 그의 백성을 집회로 이끄신 것이다.

 

여러분의 체험에 따라 여러분을 점검해 보자.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직후에는 놀랍고 뛰어났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집에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여러분이 집회에 인도될 때까지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집회에 들어올 때 여러분은 즉시 집에 왔다는 느낌을 가졌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여러분은 집회에 들어올 때, 이곳이 여러분이 있어야 할 올바른 곳임을 느꼈다. 그곳이 하나님의 처소요, 여러분의 집회이다. 그곳이 여러분의 집회요 하나님의 처소다.


하나님의 처소인 우리의 목적지

 

우리는 이 한 가지를 아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집회에 대한 문제를 이처럼 깨닫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일종의 경배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집회가 여러분이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임을 깨닫지 못한다. 여러분이 도달한 이 목적지가 하나님의 처소가 된다.

 

하나님에게 집이 없을 때 여러분도 또한 방랑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 집이 없을 때 여러분에게도 집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거하실 집이 있을 때, 그 집이 여러분의 집이 된다. 하나님의 집이 바로 여러분의 집이다. 여러 경우에 우리는 집회에 왔을 때 바로 집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여러분이 두 달 동안 집회에 빠졌을 때 여러분은 집이 없어진 것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방랑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집회에 돌아올 때, 아! 여러분은 집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집회가 하나님의 처소요, 하나님의 처소가 우리의 집임을 증명한다.


집에서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이 합당하게 거하실 때에는 우리도 그러하다. 이 거하심이 우리의 집회다. 나는 여러분에게 집회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성경 공부나 기도 시간을 갖기 위한 일종의 봉사나 예배나 회합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 하나님이 거처를 갖는 것이다. 모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를 구성한다. 이 거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집이다. 즉 우리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하는 집이다. 모든 모임은 가족의 재결합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다만 봉사나 경배나 성경 공부나 가르침이나 기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있는, 하나님의 처소인 모임이다.


시온 산에 심겨짐

 

17절에서는 『당신이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당신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오 주여 이는 당신이 거하시려고 만드신 것이라 오 주여 이것이 당신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흠정역 참조)라고 말한다. 나는 모세가 이 구절에서 언급한 기업의 산이 시온 산을 언급한 것이라 믿는다.

 

시온 산은 거룩한 땅에 있는 산이다. 거룩한 땅은 하나님의 기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업의 산은 시온 산이다.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을 시온 산에 심기를 원하셨다. 지리적으로 말하면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을 시온 산에 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시온 산은 그렇게 큰 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분의 타고난 이해이다. 하나님의 이해와 하나님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은 그 산에 심겨졌다. 적어도 일 년에 세 차례-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에 모든 남자들은 그 산에 거하려고 모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 산에 심겨진 것이다.


하나님에게 기쁜 시간

 

여러분은 심은 이것이 모임이었고, 그 모임이 하나님의 처소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절기가 계속되는 날에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은 밤낮 그 산에 거했다. 그들의 절기가 이레 동안 계속되면 그들은 산에서 이레 동안 머물렀다. 여러분은 그때가 하나님에게 가장 기쁜 시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시온 산을 바라보고 그의 모든 택하시고 구속하신 백성들이 거기 있는 것을 바라보실 때 아주 기뻐하셨다. 그 모임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였다. 그분이 택하시고 구속하신 모든 백성들이 그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했다. 그것이 심은 것이요, 모임이요, 처소이다. 그것은 또한 서로의 공동 집이었다. 그것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의 참된 집회였다.


예표의 완성

 

그것은 구약에 나타난 그림이었고, 오늘날 우리의 집회는 그 예표의 완성이다. 과거에 나는 모임에 대한 문제를 그다지 분명히 보지 못했었다. 지나간 몇 주 동안 모임에 관한 진리는 나에게 더 중요하게 되었다. 과거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 교회는 우리의 생활』이라는 표어가 있었다. 우리는 교회라는 단어를 집회라는 단어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요 집회는 나의 생활이다.

 

여러분은 오늘날 이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들이 춤을 추든지, 파도타기를 하든지, 구기를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도박을 하든지, 도둑질을 하든지, 모두가 비참하다. 강하든지 약하든지 그들은 비참하다. 건강하든지 병 들었든지 비참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도 비참한가? 여러분이 집회에 오지 않으면 비참한가, 유쾌한가? 나는 집에서 매일 기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다고 간증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집회에 오면 기쁘리라는 것을 보장한다. 나의 교회생활 오십 년간에, 나는 비참했던 집회를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 나는 집에서는 가끔 비참하다. 집회에서 비참했던 것은 한번도 기억할 수 없다.


가장 즐거운 곳

 

왜 우리는 집회에서 그렇게 즐거운가? 때때로 나는 집회가 너무나 길다고 느꼈다. 최근에 만찬 집회는 두 시간 사십 분이나 계속됐다. 나는 백 육십 분 동안 앉아 있기가 정말로 피곤했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비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피곤했으나 여전히 즐거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집에 가고 싶었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거기에 머무르고 싶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내가 집회에 있는 한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집에 돌아간다면 나는 비참할지도 모른다. 나는 집회에 있는 한 즐거우리라는 확신과 보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의 집회 생활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집회에 오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에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은 생명과 사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여러분이 죽고 싶으면 다만 집에 있으라. 살고 싶으면 집회에 오라. 집회 밖에서는 즉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에 오면 살아날 보장이 있다. 여기에서는 즐겁다. 나의 체험을 통해 나는 가장 즐거운 곳이 집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땅 위에 다른 곳에는 이렇게 즐거운 곳이 없다.

 

때때로 여러분은 주관적이고 사적(私的)인 문제로 인해 비참한 상황을 집에서 집회로 가지고 왔다. 여러분은 집회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한다. 때때로 나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집회소 정문 바로 앞까지 가지고 오지만, 그때 나는 말했다. 『나를 따라 오지 말라! 가버려라!』 그리고 나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 없이 집회에 왔다.

 

인간 생활에서도 유일하게 즐거운 때나 장소는 집회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장 기쁜 시간과 가장 기쁜 곳은 결혼식이라고 말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기쁜 시간이고 기쁜 곳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온 일생에 오직 한 번 있다. 그러나 집회 시간과 집회하는 곳은 우리가 거듭거듭 체험할 수 있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가장 즐거운 곳과 가장 즐거운 시간은 우리의 집회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러한 집회를 갖지 못하므로, 결코 그렇게 유쾌한 곳을 맛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맛본다. 여러분이 나에게 내 인생의 체험 가운데서 가장 즐거운 시간과 장소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집회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결코 집회만큼 즐거운 시간이나 장소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사실을 말한다면, 만일 미국에 집회가 없다면 미국은 지옥일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텔레비전을 보는가? 그것은 지겨운 일이다. 음악을 듣는가? 그것은 형편없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주 예수를 믿어,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어 그분의 거처로 안내하시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집회이다.


하나님의 거처에 머무름

 

어떻게 17절에 있는 산이 시온 산을 언급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곳이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는 성전이다. 먼저 하나님은 시온 산을 만드셨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고 세우셨다. 하나님의 성소인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모이는 곳이다. 그들은 모두 매년 세 차례씩 다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고 거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들은 그들끼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칠 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 거기에 거했다. 성경에서 칠 일은 완전한 시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우리가 일생 동안 모임에 머물러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처에 머물러야 한다. 다른 말로 해서, 우리는 집회 안에 머물러야 한다.


주께서 택하신 곳

 

이제 신명기 12장 11절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거하게 하려고 택하실 한 곳이 있으리니 너희는 그곳으로 내가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주께 서원하는 모든 택한 서원물을 가져가고』(흠정역 참조).

 

이 구절은 한 곳을 언급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좋은 땅으로 들어간 후에 아무 곳에서나 모이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합법적인 곳은 한 군데뿐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이었다. 매년 세 차례씩, 그들은 그 땅으로부터 그들의 가장 좋은 산물을 모임을 위하여 다 그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거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다. 그것이 그들의 집회시간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매년 모였다. 이것들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임의 다른 면들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

 

모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시편 73편 16절과 17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고통스럽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흠정역 참조). 시편 기자가 어떤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은 그에게 고통스러웠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결혼과 직업과 학교에 대한 주님을 뜻을 찾고 있었다. 많은 경우,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추구했으나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여러 경우에 있어서, 우리가 다만 집회에 왔을 때, 우리가 알기를 추구했던 것이 우리에게 매우 분명해졌다. 말씀이 그 특별한 문제를 다룬 것도 아니고, 그에 관한 간증도 없었다. 우리는 다만 집회에 와서 앉아 있었으나 분명한 것이 왔다.

 

물론 많은 때, 간증이 우리를 분명하게 되도록 도왔고 더 많은 경우에 메시지가 우리를 분명해지도록 도왔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 모두가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가장 좋은 장소와 시간은 우리가 집회에 올 때라는 것이다. 집회 밖에서 주님의 뜻을 알게 되는 사람은 많지 않으나, 집회 안에서는 무척 자주, 많은 사람이 주님의 뜻을 알게 된다.

 

아주 많은 경우에 우리는 어떤 일을 놓고 계속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알기를 구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집회에 올 때 아주 분명해진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먼저 아는 데 달려 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주된 부분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일을 아는 것은 그것을 하는 것의 가장 큰 부분이다. 뜻을 안 것은 뜻을 행하는 것과 거의 일치한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의 의도는 기도하고, 경배하고, 봉사하고,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 권면을 받고, 힘을 얻고, 안위함을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일지 모른다. 이것이 우리의 이해이다. 실지로 우리의 집회의 표면 아래에는 놀라운 것들이 아주 많이 있다. 집회에 참예함으로써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많은 혜택과 이득을 얻는다. 이것은 우리가 집회를 귀히 여겨야할 만큼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집회에 대하여 소중히 여겨야할 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가장 중대한 것

 

우리는 오늘날 이땅에서 우리의 내적인 생명 외에는 집회만큼 중대하고 중요하고 유익한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말을 믿으라! 어느날 여러분은 직장을 잃는 것도 집회를 놓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간증할 것이다. 집회를 놓치는 것은 참된 것을 잃는 것이다. 직장을 잃는 것은 참된 것을 잃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미신적인 방법으로 확신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합당하게 집회에 참석한다면, 주님이 여러분의 직장을 지켜 주시리라고 말하겠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자녀들처럼 합당하게 집회에 참석한다면, 여러분에게 직장이 없더라도 주님은 만나를 여러분에게 보내 주실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모두 직장을 그만두자. 이 집회를 시온 산으로 여기고 매일 여기서 모이고 매일 여기에 거하자.』 이것은 미신이다.


만나를 거둠

 

그러나 여러분은, 고린도 후서 8장에서 바울이 만나를 거두는 것은 우리의 정규적인 일로 여긴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은 만나를 거둔 이야기를 알고 있다. 어떤 욕심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거두었으나 되어 본즉 같았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모으고 싶어하지만 결국에는 같게 나타난다.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거둔 자도 지나침이 없다.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다. 같게 나타난다. 여러분이 모든 힘과 노력을 들여 많이 거둘지 라도 결국 여러분이 얻은 것은 같다.


먼저 그의 왕국을 구함

 

우리 모이는 백성들은 만나로 산다. 여러분의 직장으로 살지 말라. 직장에서 가서 일을 하지만 여러분의 직장으로 살지 말라. 만나로 살라. 심지어 여러분의 직장도 만나다. 하나님은 모든 만나를 없앨 수 있으시다. 하나님은 그의 새끼 손가락을 사용하여 미국 경제를 만져서 직장들을 없어지게 할 수 있다. 직장이 없어지면 만나도 없어진다. 여러분은 이것을 여러분의 직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내신 만나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다. 그 분은 내일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내일에 대해 어떤 근심도 갖지 말라고 하신다. 내일은 여러분의 손에 있지 않다. 내일의 생활을 살지 말라. 오늘의 생활을 살라. 먼저 그분의 왕국을 구하라. 그러면 의복과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더할 것이다. 그 분은 여러분이 먼저 구한 왕국과 함께 모든 필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이다(마 6:31-34). 이것이 만나다. 직장을 잃는 것이 여러분을 염려하게 해서는 안 되고, 집회를 놓치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야 한다.

 

나는 약 오십 년 동안 주님을 섬겨왔다. 나는 그 오십 년 중 초기에 직장을 잃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좋은 직장을 가졌으나 그것을 포기했다. 아! 내가 직장을 그만두려고 결심했을 때 그 직장은 온 땅보다도 더 큰 것같았다. 그러나 오십 년이 지난 지금, 분명한 사실은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신실하시다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 대하여 근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분을 추구하는 한 우리의 필요한 것에 대하여 어떤 근심도 필요없다.


실제적인 왕국 생활

 

여러분은 실제적인 왕국 생활이 집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왕국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모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무슨 종류의 왕국인가? 실제적인 왕국은 집회생활이다. 모이는 것이 먼저 왕국을 구하는 것이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먼저 왕국을 구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약속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

 

이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문제로 돌아가자. 우리는 이땅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그의 뜻을 알 수 있는가? 집회에 참석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내가 확신하거니와, 집회에 오지 않고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집회에 오는 것이다. 집회에 빠지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놓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전에 여러분이 그 가운데서 구출받은 사탄의 학정 아래로, 비참한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집회도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직장을 위태롭게 한다면 위태롭게 하도록 두라. 집회에 오는 것이 최선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집회에 오기 때문에 결국 진정으로 고통받는 성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 성도를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집회에 계속 나왔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많은 축복, 즉 영적인 축복뿐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까지도 받은 사람을 수천 명 보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신실한 분이시고, 그분의 약속은 믿을만한 것이다.


우리의 운명

 

성도들이여, 용기를 갖고 확신을 가지라. 이것은 옳은 길일 뿐 아니라 유일한 길이다. 우리에게는 선택이 없다. 사람이 되었으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집회에 와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집회에 오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일 뿐 아니라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예정하셨다. 함께 모이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과 함께 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그의 축복 아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그 가시채를 걷어차면 우리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집회에 오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희생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시간을 사업에 쓰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사오 년 동안 그렇게 하도록 둔다면 그들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이와같은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심히 속이는 것이며 심히 잘못 인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에 나타난 믿을만한 말씀에 서야 한다. 우리는 그의 약속을 신뢰하고, 집회에 오라는 그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 여러분이 집회에 오면, 그의 예정을 지키는 것이며, 축복이라는 운명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한 세대뿐 아니라 삼대 혹은, 다음 세대까지 대를 이어가며 임할 것이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모이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결국 그분의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교회 집회에서 체험하는 제물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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