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출애굽기 5:1, 10:9, 23:14, 시편 42:4, 122:1, 사도행전 2:46-47, 고린도 전서 14:26, 히브리서 10:25

 

기도 : 주여, 이 모임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이 지역의 모든 교회들과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당신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여, 이 모임은 우리 위에 우리 안에 있는 대적에게까지도 당신의 승리를 간증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는 당신이 순간순간 말씀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말할지 결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산 말씀을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우리의 영 안에 오시옵소서. 주여, 우리 모두가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의 계획에 따른 것을 보도록 깨어 있는 생각을 열어주소서. 당신의 귀한 이름으로 요구합니다. 아멘.


 

여름 훈련 집회 후에 나는 집회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것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어떤 새로운 빛이 나에게 임했다. 메시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집회에 대한 일반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집회가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그분을 전람하는 것임을 볼 것이다.


집회 생활의 시작

 

여러분은 성경에서 언제 집회 생활이 시작되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가? 여러분 중 대부분은 잠시 생각한 후에,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부터 집회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집회생활은 이보다 훨씬 먼저 시작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오순절 날의 집회는 다만 수세기 전에 시작된 집회가 계속된 것이다. 언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했는가? 여러분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어떤 집회를 찾아 볼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집회가 없다. 기껏해야 가족들의 재회(再會)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50 장 전부에도 집회나 모임이 없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 없다.

 

그러나 성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에 오면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가 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행해졌을 때, 즉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거기에 함께 모이라는 요구가 있었고, 이 요구는 하나님의 구원과 함께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어떤 개인들이나, 한무리의 개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중을 구원하셨다.

 

물론 출애굽기에 나타난 말씀에 따르면, 「모임」과 같은 단어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보내셨을 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게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5:1, 원문 참조). 「내 백성」은 집합적이다. 그것은 다만 한 사람이 아니라 집합적인 사람들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어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도록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러분은 모임에 대한 생각이 절기라는 이 단어에 함축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같이, 오직 한 사람만 있다면 절기를 가질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당신 혼자서 절기를 갖기란 어렵다. 당신은 약간의 통닭과 몇 개의 파이와 그밖의 것들을 사서 혼자 절기를 지키려고 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기란 어렵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절기를 지키기조차도 어렵다. 여전히 절기의 맛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절기의 맛이 더 난다. 절기란 모여서 먹는 것이다. 당신은 먹기 위하여 사람들을 함께 모아야 한다. 이 먹는 것은 모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절기는 두 가지, 즉 먹는 것과 모이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둘 다 중요하다.

 

먹는 것과 모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첫째고 어느 것이 둘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들이 절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이다. 먹는 것이 없이는 절기가 있을 수 없다. 모이는 것이 없이는 절기가 있을 수 없다. 절기에는 먹는 것과 모이는 것이 필요하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게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님과 함께 모임으로 말미암아 먹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백성을 위한 절기이지만 「하나님께」드리는 절기이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요구를 보기로 한다. 첫번째 요구는 모이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여러분은 회중에 참여함이 없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출애굽기의 예표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떤 개인들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을 구원하셨다. 이 백성은 함께 먹고 함께 모였다. 그것이 주님께 대한 절기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임으로 먹고 누렸으나 이것을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주로 주님께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다.


오순절날에

 

오순절날조차도 구원을 받은 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지 개인들이 아니다. 성경에서 첫번째 언급의 원칙에 따르면 오순절 날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첫번째 경우에서 개인들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의 구원이었다. 그들은 구원받은 후 즉시 함께 모였다(행 2:46-47).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주의깊게 연구한다면 오순절날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었음을 알 것이다. 그들은 함께 머물렀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긴밀히 연결되었다. 그들이 긴밀히 연결된 것은 승리의 간증이었다. 그 간증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도행전 5장 13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그들과 상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내가 조그만 아이였을 때, 나는 군대를 처음으로 보고 죽도록 겁을 먹었다. 나는 감히 그 군대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오순절날에 있었던 교회의 첫번째 집회가 매우 두려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그때에 그들은 거의 매일 모였을 것이고, 그들이 모일 때마다 그것은 승리의 간증이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대적과 사탄과 세상과 모든 마귀들 위에 간증한 것이다.

 

집회에 대한 새로운 빛의 첫번째 요지는 이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생활은 출애굽기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생활이 사도행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지 말라. 사도행전에서 일어난 것은 수 세기 전에 출애굽기에서 시작된 그 집회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집회 장소도 변하지 않았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였던 같은 성전에서 모였다. 성전에서의 집회는 시내 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회의 연속이었다. 합당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승리의 간증

 

두 번째 새로운 빛은 이것이다. 즉, 집회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간증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는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 있는, 그의 대적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간증이다. 상황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학정 아래 있었을 때에는 구원이 없었다. 바로 위에 승리함이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패배했고 사로잡혔다. 그들은 일종의 학정 아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시내 산에서 모였을 때, 그것은 바로와 애굽과 사탄과 그의 모든 마귀들 위의 승리를 의미했다.

 

오늘날 교회 집회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모든 마귀들과 귀신들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전람(展覽)이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패배시키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해변이나 극장이나 어떤 나이트 클럽이나 당구장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곳에 있었을 때 우리는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는 사탄의 학정 아래 있었다. 약 60 년 전에 나는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할렐루야! 오늘날 나는 그런 곳에 있지 않다. 오늘날 나는 모든 성도와 함께 시내 산 집회에 있다. 우리가 여기 집회 가운데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간증이다.


무리와 함께 집회에 옴

 

그러나 나는 때때로 어떤 성도들이 해방된 포로들처럼 집회에 오지 않는 것을 목도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엘든홀(Elden Hall : 로스앤젤리스 교회의 첫번째 집회소)에 관하여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고 충고해 왔으나, 나는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에 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 성도들이 집회에 올 때 승리가 있었다. 성도들은 외치고, 찬양하고, 노래하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집회에 왔다.

 

물론 몇몇 이웃 사람들은 외치고 즐거워하고 노래하는 소리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경찰을 불러 불평을 털어 놓았다. 경찰은 불평하는 그 이웃들에게 그 교회가 오기 전에는, 이 지역은 무시무시하고 두려웠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몇몇 살인 사건이 거리에서 발생했었다. 그러나 교회가 온 이래로 그 지역은 아주 훌륭한 지역으로 되었다. 그래서 경찰은 이웃들에게 가서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든지 이사갈 것을 고려해 보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거의 삼백 명의 성도들이 집회소 바로 근처에 살고 있었다. 집회에 오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많았다. 그때에 집회는 집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도 시편 122편 1절을 인용한 메시지를 전한 것을 기억한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나는 아직도 내가 격려한 말을 기억한다. 『여러분 혼자서 집회에 오지 맡라! 항상 무리와 함께 집회에 오라.』 무리라는 이 단어는 시편 42편 4절에 두 번 쓰였다. 『내가 전에 무리와 동행하고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함께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집으로 향했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할 때 내 안에서 나의 혼을 쏟아 놓는도다』(행간역 참조). 나는 성도들에게 혼자서 오지 말고, 여러 사람과 - 노래하며, 찬송하며, 걸으며, 뛰며, 즐거워하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 집회에 오라고 권면했다.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조용히하지 않고 즐거워함

 

그러나 오늘날 나는 성도들이 집회에 올 때 너무나 조용한 것을 보았다. 그들은 조용한 백성들이다. 그들은 불쌍한 감옥으로부터 해방받은 조용한 포로들의 무리같다. 여러분은 해방을 받았다. 여러분은 카지노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기쁨이 충만하지 않다. 여러분은 즐거움이 충만하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시내 산에서 모였을 때 즐거워했으리라 믿지 않는가? 그들이 즐거워 했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들이 홍해의 바닷가에서 즐거워했기 때문에 그들이 즐거워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바로와 바로의 군대를 바다의 밑바닥에 넣으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히 자매들은 늙은 자매 미리암의 지도 아래 하나님께 큰 소리로 찬양을 드렸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미리암들이 필요하다. 자매들은 너무나 잠잠하고 형제들은 훨씬 더 잠잠하다.

 

이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는 사탄과 세상과 마귀들과 모든 묶는 것들 위에 있는 승리의 간증임을 교통하려 하는 것이다.


절기를 누리기 위하여 구속받고 해방됨

 

성경에서 묘사한 그림을 보라.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것은 곧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타락하고 타락하고 또 타락하여 적어도 서너 단계에 걸쳐 타락했다. 결국 이 사람은 완전히 바로의 학정 아래 있는 애굽으로 떨어졌다. 거기에는 자유도 없고 하나님도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람을 애굽으로부터, 바로의 강탈하는 손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내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파자들이 그러한 이야기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들을 사탄의 학정으로부터 절기로 해방시키는 것임을 결코 지적하지 않았다. 이 절기는 해방과 자유뿐만 아니라 절기를 누리는 모임을 내포한다. 여러분은 절기를 누리기 위한 이 모임이 그의 구속된 모든 백성 안에 있는, 그의 대적 위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승리의 간증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구속받았으나 아직 그 절기 안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절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엘든홀에서의 집회 참석율은 매우 높았다. 삼백 명 거의 모두가 모든 집회에 참석했다. 때때로 기도 집회의 참석자들은 훨씬 더 많았다. 만약 어떤 지방 교회의 집회 참석율들이 낮다면,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승리를 그다지 많이 깨닫거나 누리지 못한다는 것을 표시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승리를 누린다면, 분명히 우리는 절기에 참석할 것이다. 우리는 절기에 뛰어들 것이다!


변명이 없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성도들을 동정하는 어떤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은 직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먼 거리를 운전하고 왔기 때문에 지쳐버렸을 것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도 이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엘든홀에서는 참석율이 왜 그렇게 높았는가? 그곳에 있던 모든 성도들에게는 직장이 없었는가? 사실, 직업 없는 사람은 현재 더 많다. 실업율은 오늘날 더 높다. 십 이 년 전 엘든홀에는 직업 없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충분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변명은 대부분의 자매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엘든홀은 어떠했던가? 그 모든 자매들에게 자녀들이 없었는가? 모든 자매들이 다 결혼하지 않았는가? 변명이 필요없다. 오직 한 가지 이유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누림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침에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있으면 분명히 저녁에 집회에 올 것을 기대한다. 그리스도를 누림,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항상 여러분을 교회로, 집회로 인도할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낮에 대적 위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누렸다면, 여러분은 집회 시간을 예비하고 준비하고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다. 여러분은 외치며, 즐거워하며, 찬양하며 집회에 올 것이다. 여러분은 오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서 대적을 패배시킨 간증을 할 시간을 가질 기대를 가지고 올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성경의 원칙은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절기를 위한 것이며, 절기는 항상 모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구원이 부족함

 

여러분이 모임에 오지 않는다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부족하다는 강한 증거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다지 많이 누리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그다지 많이 참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회를 향한 여러분의 식욕과 배고픔과 목마름이 그다지 높지 않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누리면,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집회에 가고 싶은 갈망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예하면 여러분은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것이다. 여러분은 집회에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하루를 짧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예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항상 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낀다. 너무 빨리 여섯 시 반이 왔는데도 여러분은 아직 저녁 식사를 끝내지 않았다. 어떻게 여러분이 집회에 갈 수 있는가? 이것이 여러분의 느낌이라면 그것은 여러분이 오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예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많이 참예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조금만이라도 참예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 여러분을 흔들어 놓고, 집회에 오게 하고, 빨리 올수록 더 좋게 한다. 그럴 때 여러분은 집회에 와서 첫째 줄 좌석을 찾아볼 것이다. 여러분이 패배했을 때 여러분은 집회에 오기가 싫다. 그리하여 늦게 오고 앞에 몇 개의 빈 좌석이 있어도 여러분은 거기에 앉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뒤에 앉을 것이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승리가 필요하다는 표시이다.

 

밖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대적자가 사람을 얻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패배시킨 것 같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다. 모든 사람들이 사탄에게 사로잡혔다. 그들도 또한 그들의 모임을 가지고 있다. 타락된 사람들이 매일 밤 얼마나 많은 모임과 회합과 집회와 회의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극장에 가는 것도 일종의 모임에 가는 것이다. 나이트 클럽에 가는 것도 일종의 모임에 가는 것이다. 오늘날 온세상은 사탄에게 사로잡혔다. 사탄은 포로의 무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자! 그리스도께서 승리를 얻으셨다. 적어도 그분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얻었다. 그분은 우리를 사로잡으셨다! 모든 지방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간증으로 이루어진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이 사탄의 대열에서 포로들이 되었으나 우리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 대열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탄 위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간증하는 이 집회에 왔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모이는 것이 필요하며, 가능한 한 많이 모일수록 더 좋다. 당신은 시내 산에서 성도들이 매일 모였으리라고 믿지 않는가?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누림

 

그리고나서 여러분은 물을지 모른다. 생계는 어떤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옷을 입을까? 나에게 오지 말라. 그 사람들이 시내 산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려면 성경으로 가보는 편이 낫다. 여러분은 잊었는가? 만나가 내려왔고 생수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여러분은 『정말로 그랬을까?』라고 물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모인다면 만나가 내려 올까? 나는 정말로 그렇다. 여러분이 나를 믿지 않으면 해 보자. 우리가 매일 저녁 모일 때 우리에게 먹을 것이 부족한지 보자. 주 예수님의 말씀은 먼저 그의 왕국과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다.

 

옛날, 성도들은 시내 산에서 매일 모였다. 사십 년 동안 거의 이 백 만 명이 되는 그 사람들이 다만 모이고 여행했다. 그들은 다만 한 가지, 성막만을 다루었다. 그들은 성막 주위에서 모였고 성막을 가지고 여행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그밖의 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그들에게는 직업, 즉 농사 짓는 일이나 어떤 산업이 없었다. 그것이 분명한 예표다.

 

그리고 오순절날, 신약의 성도들도 같은 일을 했다. 매일매일, 그들은 성전에서, 또는 이집에서 저집으로 모였다.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잡담하지 않고 찬양하고, 전도하고, 가르치고, 예수에 대하여 말했다. 성도들이여, 기독교는 그러한 특징을 잃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절기 안으로 구원하셨으나 이 절기는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버렸다.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의 승리에 참예함

 

최근에 나는 중공에서는 한 성의 각각 다른 장소에 십 사만 명의 새로운 신자들이 있었다는 어떤 정확한 소식을 읽었다. 때때로 그들 중 몇 명, 주로 인도자들은 집회를 갖기 위하여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하루종일 모였다. 그들은 하루종일 거기에서 모였다. 그리고 좋은 일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을 먹은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이름 부르기를 잃고, 말씀 먹기를 잃은 것 같다. 언젠가 엘든홀에서는 기도 집회에서 성도들이 에베소서 전권을 기도로 읽은 적이 있다. 오늘 우리는 기도로 먹는 것이 아주 적다. 이것은 하나의 약점, 즉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잃고 그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을 아주 많이 잃은 것에 대한 표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을 회복한다면, 분명히 외치며 노래하고 찬양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로 말씀을 읽는 것이 회복될 것이다.


합당한 집회를 회복함

 

여기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전쟁이 있고 싸움이 있다. 우리는 주의 회복 안에서 주님이 회복하시는 첫번째 것이 집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집회는 하나님의 회복의 정면이다. 여러분도 아는 바와같이, 어떤 건물의 정면은 매우 탁월한 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 합당한 집회가 없다면 그것은 정면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집회에 대하여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그분의 긍휼을 받기 위해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주의 회복에는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 것을 선포하는 정면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의 승리에 참여하며, 이제 절기 안에 있다.

 

출애굽기를 다시 보자. 이스라엘 자녀들은 바로 아래의 종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을 누렸다. 그것이 그들이 그리스도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구속일 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이요 해방이요 자유였다. 그리스도가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그들은 서로서로 떨어져 있을 수 없었다. 유월절로부터 그들은 함께 머물렀으며 주님의 군대가 되었다. 그 군대는 주님에 의하여 애굽 군대를 패배시켰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누렸고 애굽 군대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했음을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일-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함-은 그들을 절기 안으로 인도했다. 그 절기가 바로 모임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더 누리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 그들이 싸운 법은 다만 모이고 먹는 것이었다. 그들이 싸운 법은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의 승리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 누림과 이 참여는 다만 함께 모이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기독교의 예배에 대하여 잊어버려야 한다. 아침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려야 하고 온종일 그분의 승리에 참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은 저녁에 우리를 집회로 보낼 것이다. 매일 아침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고, 매일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며, 매일 밤 함께 모인다. 여러분이 아침에 그리스도를 누리고 온종일 그의 승리에 참여한다면 저녁에 혼자 집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일은 여러분을 집회에 참석하도록 자극하고, 몰아대고, 명령하며, 결국에는 집회에 보낼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할렐루야를 외치고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권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의 승리에 참여함은 여러분을 자극하고, 여러분을 날고 솟구치고 뛰게 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함께 집회에 오게 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교회 집회에서 체험하는 제물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승리로 그분을 전람하는 집회",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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