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믿는이가 영을 좇아 행하기 원한다면 영의 모든 법칙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영의 법칙을 아는 사람만이 영 안의 각종 느낌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의 느낌들을 알아야만이 영의 느낌이 요구하는대로 행할 수 있다. 영의 모든 요구는 느낌을 통해 표현된다.

 

영의 느낌을 주의하지 않는 사람은 영의 요구를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의 법칙을 알고 그것을 좇아 행하는 것은 영적 노정에서 첫째 되는 일이다. 그러나 영을 좇아 행하는 믿는이는 영의 법칙을 이해해야 하는 것 외에 또한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을 깨달아야 한다. 이 원칙은 영의 법칙만큼 중요하다. 영을 좇아 행하는 길에서 항상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영의 법칙만 이해하고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은 때에 여전히 실패하게 된다.

 

이것은 영의 법칙은 단지 영의 각종 느낌과 그 느낌의 의미와 그 느낌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는 방법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뿐이기 때문이다. 영 안에 느낌이 있을 때에 우리는 영의 느낌을 좇아 행할 수 있다. 만일 그 느낌이 합당한 것이라면 좇아 행할 수 있고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생활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다. 즉 우리의 영에 항상 느낌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은 항상 음성을 발하는 것이 아니며 영은 때로 입을 열지 않는다. 많은 믿는이의 체험에서 며칠 동안 영이 입을 열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러한 때에 영은 마치 활동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 잠자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영이 며칠 동안 활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그 며칠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영이 활동할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을 착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더러 며칠 동안 기도도 하지 말고 성경도 읽지 않고 일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말인가? 우리의 영적인 상식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헛되이 세월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때에 만일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영을 떠나서 육체 안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있을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우리가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을 적용할 때이다. 생각은 어떻게 영을 보조하는가? 이 뜻은 영이 잠잘 때에 우리는 생각으로 영의 역사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 오래 되지 않아 우리의 영이 다시 이런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생각과 영은 본래 긴밀히 연결되었다. 이 둘은 서로 상부상조한다. 많은 때에 영은 생각으로 어떤 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어떤 느낌을 내고, 어떤 때에는 영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믿는이는 생각의 활동을 통해 영의 활동을 유발시켜야 한다. 영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 생각은 영의 활동을 유발시킬 수 있다. 영이 다시 활동한 후에 믿는이는 그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으로 영의 활동을 유발시키는 것을 가리켜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이라고 한다. 영적인 생명의 한가지 원칙은 초기에는 우리가 영의 지각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식을 얻지만 나중에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지식을 보존하고 이 지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 앞에 중대한 필요가 생겼다 하자. 전에 하나님에게서 얻은 지식으로 말하자면 이럴 때 당신은 기도로 하나님께 그 필요를 채워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필요를 바라볼 때 당신의 영에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사용하여 기도해야 한다. 영의 느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 모든 필요는 다 일종의 기도하라는 부르심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를 시작할 때에 당신의 영이 잠잠한지를 상관말고 계속 기도한다면 얼마 안 가서 당신 속에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영으로 기도 사역에 참여하게 할 것이다.

 

어떤 때에 우리의 영은 사탄의 압제를 당하거나 천연적인 생명에 매여서 우리의 영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우리의 영이 극히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지각조차도 사라진 듯하다. 우리가 우리의 혼과 몸을 느낄 수 있지만 영의 위치는 공허한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영에 지각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도할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아마 당신에게는 다시 기도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또한 영도 자유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 당신이 취할 방법은 전에 당신이 알았던 진리대로 흑암의 권세를 대항하기 위해 당신의 생각속에 기억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다. 설사 당신이 영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생각으로 기도하라. 생각의 이러한 활동은 영이 움직이도록 영을 격동시킬 것이다.

 

생각으로 하는 기도(고전 14:15 원문 참조)는 영을 움직인다. 비록 처음에는 빈 말로 기도하는 것같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생각으로 기도하고 대적한다면 얼마 안 되어 당신의 영은 높이 치솟을 것이다. 이 둘(영과 생각)은 서로 협력하여 동역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싸움에 대한 진리를 배웠고 기도의 방법을 배웠으므로 이제 영이 없는 것같은 상황에서도 당신의 생각을 사용하여 영이 생각의 격동으로 인해 기도에 동참케 해야 한다. 당신의 영이 일어날 때 당신은 당신의 기도가 의미있고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영과 생각이 동역하는 이것이 영적 생활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영적 전쟁

 

영적 전쟁에서 믿는이는 영과 생각이 동역하는 원칙을 잊어버림으로 「하나님의 부담」을 기다리기만 하고 항상 원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전쟁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느낌이 생길 때 기도로 원수에게 진격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생각으로 약간 기도하기만 하면 영의 느낌이 즉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악의 영이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주의 자녀와 세상 사람을 해쳤는지를 분명히 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기도로 원수를 대적하고 그를 속히 무저갱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지식이 있다면 우리는 영 안에 느낌이 생긴 후에야 기도할 필요가 없다.

 

비록 당신에게 아직 느낌이 없어도 당신은 기도해야 한다. 먼저 당신의 생각으로 기도하기 시작하고 당신의 지식으로 악한 영을 저주한다면 당신의 영은 즉시 움직일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저주한 말 속에 영의 능력이 있게 된다. 가령 아침에 성령이 당신에게 「기름부음」을 주어 악한 영을 저주할 수 있었다가 오후에 이 영을 잃어버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아침에 영으로 행한 것같이 이제는 생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원칙 중에 하나이다. 즉 영 안에서 얻은 것을 생각을 사용하여 보호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휴거

 

휴거에 대한 믿음도 이와 같다. 처음에 당신은 「휴거의 영」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후에 당신은 당신의 영에 공허함이 느껴질 것이다. 마치 주님의 재림과 당신이 들림받는 실제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이 때에 당신은 영과 생각이 서로 돕는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의 영 안에 느낌이 없을 때에는 생각으로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영 안에 휴거의 느낌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이것을 얻지 못한다. 당신의 생각 안에서 묵상하고 기도한다면 과거 당신이 소유한 것은 당신의 영 안에 충만하게 된다.


전도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이 원칙은 더욱 잊어버려서는 안 될 사항이다. 우리는 과거 우리가 배운 교리가 현재 우리의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만일 우리가 머리 속에 둔 것만을 사람에게 전달한다면 아무런 영적 효력이 없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 우리는 영 안에서 그 진리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 영이 쇠퇴하여 다만 그것을 기억할 뿐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서 우리 영 안에서 그런 진리로 다시 충만케 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이로 인해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겠는가?

 

이것은 다른 길이 없고 다만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 진리들을 새롭게 생각해보고 기도-그 진리들을 중심삼고 둘러싸고 기도-해야 한다. 얼마 후 우리는 우리가 다시 전에 충만된 영으로 충만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진리들은 처음에 영 안에 얻은 것이고 나중에 믿는이의 생각 속에 보존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으로 기도함으로 이 진리들은 다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전에 영 안에서 깨달은 진리를 전파하게 된다.


중보 기도

 

우리는 중보기도가 아주 중요한 일임을 안다. 우리에게 중보기도를 할 시간이 있지만 영 안에 감동이 없고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제는 중보기도를 할 필요가 없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거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때에 우리가 영의 동역을 일으키기 위해 생각을 사용하여 중보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때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사용하여 당신의 친구들과 가족들과 동역자들에게 무슨 필요가 없는지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난다면 당신은 그것을 위해 중보기도 하면 된다.

 

만일 당신이 이렇게 한 후에 영이 여전히 냉담하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혹은 바로 그 때에 당신이 소재하고 있는 교회에 어떤 면에서 결점이 있다는 것이 생각날 줄도 모른다. 혹은 각지 교회들에게 어떤 시험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혹은 어떤 지방에서 주님의 역사에 장애가 생겼다고 느낄 것이다. 혹은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특별한 진리가 필요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생각나면 그것을 위해 중보기도 하라.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당신의 영에 메아리 침이 없고 당신의 생각만이 기도한다면 그 기도 항목은 주님이 기도하라고 주신 항목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일을 위해 기도하다가 그 위에 성령의 기름바름이 있고 당신의 영 안에 메아리 침도 있다면 당신은 마땅히 중보기도 해야 할 것을 위해 기도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원칙이 곧 우리의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여 영이 경향을 찾게 하는 그것이다. 어떤 때에는 잠시 생각해 보면 영에 메아리가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우리의 생각이 협소하거나 사람의 영을 통해 성령이 기뻐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으므로 얼마 후에야 영의 협력을 얻게 된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범주를 넓히기 위해 배후에서의 사탄의 모든 역사가 무효로 돌아가도록 우리로 국가 혹은 세상 모든 죄인 혹은 온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고 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생각이 보이는 것만을 돌아본다면 한 동안이 지난 후에서야 이것들이 생각나고 성령과 생각이 하나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영의 느낌과 동역을 얻은 후에 그 일을 위한 영 안의 모든 부담을 털어 놓을 수 있다. 우리는 그 일에 관한 모든 면을 위해 상고하고 조밀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영 안에 짐이 내려 놓아질 때 가서야 다른 일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명의 원칙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도를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영 안에서 얻는다. 그러나 한동안 지난 후에 우리는 하나님이 다시 그 새로운 기도를 우리 영에 충만하게 하시기를 바랄 수 없고, 우리의 느낌을 상관 말고 우리의 생각으로 그 기도를 이어서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그 기도를 다시 영 안에서 얻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앎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가 다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간접적인 것임을 안다. 직접적인 인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은 친히 우리 영 안에서 운행하사 우리로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신다. 우리가 생각으로 영의 움직임을 주의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생 동안 우리가 한 일 중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다.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지 않은 많은 일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령 사람들이 우리를 어느 지방에 사역하도록 초청하거나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일이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발생했다 하자. 이런 것들은 직접 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긴급성을 알았지만 우리의 영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고 영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이것이 소위 간접적인 인도이다. 이때가 바로 생각으로 영을 보조할 때이다. 믿는이가 자신의 영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음을 볼 때 그는 마땅히 자기의 생각을 사용해야 한다. 만일 영이 끊임없이 영의 뜻을 나타낸다면 생각으로 영을 보조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영에 아무 말이 없고 아무 소리가 없을 때에는 생각이 영의 위치를 채워야 한다. 이럴 때 믿는이는 생각을 사용하여 자기가 의심나고 어렵다는 일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고려해 보아야 한다.

 

비록 이러한 기도와 묵상과 고려가 모두 생각에 속한 것이지만 얼마 안 가서 믿는이는 자기의 영도 이 기도와 묵상과 고려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영을 이제 느끼게 된다. 얼마 후 성령은 그의 영 안에서 그를 인도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으로 영을 보조한다. 우리는 결코 초기에 영의 움직임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생각으로 영을 「들어 올려서」 살아나게 해서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식별하게 해야 한다.


영이 활동하는 원칙

 

이로 보건대 영적인 생활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생각의 기능은 필요한 것이다. 영의 충만은 결코 바다 물결과 같이 스스로 왔다가 스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의 조건을 이행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영이 하고자 하나 아직 하지 않은 일을 발기(發起)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 느낌만을 기다린다면 그 느낌은 결코 임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 중에 오직 영 안에서 행한 것만이 영적 가치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을 좇아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또 이렇게 빈번하게 생각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을 목적 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영이 역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을 중요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생각을 사용하는 것은 영을 일으켜 역사하게 하기 위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으로 영을 유도할 때에 한 동안 지난 후에도 여전히 메아리 침이 없고 여전히 기름이 발라진 듯한 체험이 없다면 우리 생각의 활동은 멈추어서 방향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영적 전쟁시 우리 속에 오랜 「공허함」을 느끼고 영의 느낌도 없다면 생각의 활동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생각의 활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 때로 우리가 피곤하지만 여전히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어떤 때는 멈추어야 함을 안다. 이것은 규칙적이지 않다.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이것은 수동식 펌프로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펌프는 흡인력으로 물을 위로 끌어당기기 위해 먼저 한 대접의 물을 그 속에 넣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는 것은 마치 한 대접의 물을 펌프 속에 넣는 것과 같다. 만일 당신이 대접의 물을 펌프 속에 넣지 않으면 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만일 당신이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영이 끌어 올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으로 기도를 시작하지 않는 것은 마치 한 대접의 물을 펌프 속에 붓지도 않고서 한두 번 펌프질을 하고서는 이 우물 속엔 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 영의 역사는 항상 같지 않다. 때로는 사자같이 아주 힘이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갓난 아이같이 무엇을 주장하지 못한다. 우리의 영이 약하고 작용하지 않을 때는 우리의 생각이 영의 유모와 같이 영을 보호해야 한다. 생각은 영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영이 살아나도록 도울 뿐이다.

 

우리 영이 다스리는 위치에서 하락될 때 우리는 생각의 힘으로 그것을 들어올려야 한다. 만일 영이 억압을 당하여 가라 앉는다면 믿는이는 영이 다시 높이 솟아 오르고 자유하기까지 그 상태를 생각으로 살펴서 힘껏 기도해야 한다. 영에 속한 생각은 영의 안정된 위치를 보존해준다.

 

생각은 영이 지나친 활동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고 영의 지나친 하락을 들어 올릴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한다면 영은 우리의 생각(물론 이것은 영에 속한 생각을 가리켜 말한 것임)의 활동에 의해 다시 충만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무엇이든지 전에 영 안에서 행해진 것을 지금은 생각에서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성령은 당신이 어떤 일을 하라고 기름부음을 주실 것이다.

 

비록 처음에 당신에게 영의 느낌이 없겠지만 나중에 영의 느낌은 당신에게 최초에 영이 어떤 것을 원했으나 영의 약함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생각의 도움으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영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생각으로 그것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에 다시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다시 충만함을 받게 된다.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데 있어서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즉 비록 영적인 전쟁은 영과 영의 싸움이지만 우리의 영이 악한 영과 씨름할 때 우리의 온 존재의 힘이 모두 성령과 연합하여 합동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영과 생각의 모든 힘은 연합하여 나가서 적을 정복한다. 만일 이 때에 영이 억압을 당하여 대적할 능력을 잃었다면 생각은 영을 위해 계속적으로 싸워야 한다. 생각이 이렇게 싸우고 대적하며 반대하고 기도할 때에 영은 충전된듯이 다시 일어나 싸우게 된다.


생각의 상태

 

생각은 이렇게 영을 보조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생각 자체의 지위가 영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믿는이는 반드시 영의 뜻을 살피고 읽으므로 약한 영을 보조할 수 있도록 항상 자기 생각을 정상적인 상태에 두어야 한다.

 

영의 활동은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이와 같이 생각의 활동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생각이 자유로이 작용할 때에는 아주 가볍다. 그러나 만일 우리 생각이 (활을 당기는 것처럼) 지나치게 팽창되었다면 우리의 생각은 자유로이 작용할 수 없게 된다. 원수는 우리의 생각이 영을 보조하여 영을 좇아 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이 약화 될 때 아무도 영을 구출하지 못하도록 자주 우리의 생각을 지나치게 팽창시켜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생각은 다만 영을 보조하는 기관만이 아닌 빛을 얻을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영 안에서 생각에 빛을 공급한다. 그래서 생각을 지나치게 사용하다 보면 성령의 빛 비춤을 받는 기능을 잃게 한다. 악한 영은 우리의 생각이 어두워지면 온 존재가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생각이 안정됨 가운데서 일하지 못하도록 우리로 도에 지나치게 생각하게 한다.

 

영을 좇는 노정에서 믿는이는 자기 자신의 생각이 끝없이 선회(旋回)하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어떤 한 가지 주제나 어떤 근심, 걱정 및 하나님의 뜻을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 감당하지 못하고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안정된 생각을 유지해야만이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다.

 

생각의 위치가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믿는이가 다른 사람과 동역을 할 때에는 다른 형제들의 사상을 중단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사상을 차단시키는 것이 생각에 가장 해를 가져다 준다. 성령이 사람의 영을 통해 믿는이의 생각을 인도하실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그 인도가 사람에 의해 차단되는 것이다. 만일 차단되면 생각은 팽창되기 때문에 영과 동역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자유함 가운데 보존시켜야 할뿐 아니라 또한 우리 형제의 생각도 돌아보아야 한다. 형제와 대화하기 전에 우리는 그 사람의 「생각하는 노선」을 먼저 탐지(探知)한 다음 그와 교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제24장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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