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9 13:31

지식과 실재

조회 수 2141 추천 수 0 댓글 1


아침에 어떤 블로그의 글을 읽고 느낌을 적어봅니다.

 

지식과 실재!
어떤 것이 지식이고 어떤 것이 실재인가?

이 주제를 제가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실재가 부족한 사람 중 하나라고

제 양심 안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재가 없다!

주의 회복에 들어와 얼마 안되어 주의 상 집회에서 어떤 형제님이

신언하시며  이 말씀을 하셔서 논란이 된 것을 기억합니다.

많은 반론과 긍정의 신언들을 하면서 결론은 "주님이 실재다" 

그래서 "우리가 얻은 주님 만큼 실재가 있는 것이다" 였습니다.

 

"지식이냐 실재냐" 라는 말을 할 때,

특히 말씀을 추구하고 말하는 방면에 초점을 마추는 경향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회복의 진리들이 너무나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신언하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런 말들을 더 듣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장로교에서 30년 정도 생활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목사님이나 장로님에게 실재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러러니, 말씀에 은사가 없고 육신이 약해서 그러러니...

 

제가 연로한 어떤 형제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님!  우리가 추구하는 말씀들은 결코 낮은 말씀들이 아닌데,

더구나 우리가 하는 말들은 더욱 놀라운데,

어찌 우리 생활은 부족하죠? (즉, 실재가 없죠?)

이 질문은 다분히 어떤 의도가 있었지만,

제가 고민하고 의아스럽게 여길 뿐 아니라

또한 비밀이라고 생각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저를 보다라도...

그 형제님이 어떤 메시지를 보았는데,

리 형제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시며,

"우리가 추구하는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 지식이 된다면

자아만 커지게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많은 추구가

그 사람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주변 사람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한 사람의 배고픈 자아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이 많은 부분에서 의문을 해소시켰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겠다.

아니면 그 추구하는 말씀이 다 어디로 갔겠나?

그 놀라운 말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겠나?

 

신언하는 사람은 신언한 말들이 그 사람을 통제할 것입니다.

"너, 아까 집회에서 그렇게 신언하더니,

지금 생활은 어떠냐?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그 부분에서 본이 되고 실재가 되느냐?

이렇게 주님이 괴롭힐 것입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부족한 지체로서,

감히 이런 말들을 기록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주님이 우리의 생활과 존재를 만지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지방교회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가 없다면 주님은 다시 오실 수 없습니다.

 

"섞임에 관한 실재적인 요건들(1994년)" 에서

 

- 그러한 생활은 원래 다만 한 개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었다.

그러나 이 생활은 이제 많은 사람들 안에서 반복되고 재현 되었는데,

... 그들 모두는 양육되고, 거룩케 되고, 변화되고, 온전케 되어서,

다만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하나님-사람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온전케 된 하나님-사람들의 단체적인

생활로서, 이들은 참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의 생명을 살지 않고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살며, 그분의 속성은

그들의 미덕을 통해 표현된다 -               [제4장에서]

 

 

" 바울은 자신을 그 죽음의 틀 안에 넣고 거기서 형상을 본받았다.

이 사람 바울에게서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의 흔적과 형상을 볼수

있었다. (갈6:14, 17) ...내가 믿기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순간적으로는 이와 같다.

나는 내 자신이 이와 같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나는 감히 항상

이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순간적으로는 그렇다. "

 

" 그러면 이러한 계시와 빛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 외에는 이러한 최고봉에 도달할 길이 없다.

...우리는 주의 회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주의 회복은 시온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이 문제를 경건하게 고려 하기를 바란다. 바울은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지만, 상을 얻는 자는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그는 우리도 그와 같이 상을 얻도록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전9:24). ...나는 주님의 회복의 확장을 인해 그분께 감사하지만,

다른 한면으로, 최근 수년 간 내 마음은 매우 무거운데,

그것은 여러분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제 5장에서]

 

주 예수님!
주님이 이땅에서 살았던 생활이 실재라고 합니다. (엡4:21)
또한 바울이 폭풍이 이는 배 안에서 살았던 생활이

이 생활을 반복해서 산 생활이라고 합니다.(행28:9)

우리가 추구하는 말씀이 우리 존재가 되고 생활이 되도록

철저히 비추는 말씀에 변명하지 않고 굴복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긍휼로 주님의 생활을 반복할 수 있기를...

 

  • profile
    청지기 2011.07.19 13:33
    출처 : Poor In Spirit, Pure In Heart, http://blog.chch.kr/overcomer12
?

스크랩

몸 안의 풍성을 함께 누려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찬양노트의 스크랩 방입니다. 청지기 2010.11.21 4143
32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4)- 주님이 생명주는 영이시라구요? 1 청지기 2011.08.29 2597
31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3)- 성령보다 그리스도를 많이 강조한다면서요? 1 청지기 2011.08.29 2317
30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2)- 왜 하필 삼일 하나님이라고 하나요? 1 청지기 2011.08.24 2250
29 지방교회들의 핵심진리(1)- 하나님의 경륜이 뭐예요? 1 청지기 2011.08.24 2719
28 주님의 마음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함 1 청지기 2011.08.10 2937
27 니 형제님이 일생 동안 받은 고난과 배운 공과 1 청지기 2011.08.06 2198
26 [신간] 「재평가된 지방 교회」 -초기 평가를 재평가함 1 청지기 2011.08.03 2202
25 인간적인 정취가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1 청지기 2011.07.30 1963
24 그리스도의 몸은 어디에 있는가? 1 청지기 2011.07.30 2578
23 <신간> 재평가 된 지방 교회 청지기 2011.07.28 2101
» 지식과 실재 1 청지기 2011.07.19 2141
21 마가렛 E. 바버 자매님의 전기 1 청지기 2011.07.17 3144
20 워치만 니의 찬송 "대가없이 사랑케 하소서"에 관해 1 청지기 2011.06.17 3073
19 교회 프로그램 어디서도 ‘종말론적 고민’ 찾을 수 없다 1 청지기 2011.06.14 2004
18 2011년 전국특별집회 마지막메시지-이기는 이들의 부담 May 2011.06.13 1856
17 2011년 특별집회 메시지2 May 2011.06.10 1819
16 2011년 특별집회 메시지1 May 2011.06.10 1614
15 2011년 사역원 장로훈련집회를 참석하고서... 2 청지기 2011.04.18 2589
14 인터뷰/ "위기의 기독교" 저자 행크 해너그래프 1 청지기 2011.01.19 2988
13 감옥에 있는 워치만 니 (우요치가 씀) 2 청지기 2011.01.06 2762
12 워치만 니의 공로를 치하하여 - 미국 국회 의사록 1 청지기 2011.01.01 2954
11 지방교회들에 대한 증언/행크 해네그래프 1 청지기 2010.12.29 2777
10 지방교회들에 대한 증언/그레첸 파산티노 1 청지기 2010.12.29 2316
9 회복역 서평(아마존) 1 청지기 2010.12.25 2813
8 풀러 신학 대학 성명서 1 청지기 2010.12.19 236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