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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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1900여 년전, 빌라도가 주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이 질문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질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 있는 진리를 우리 뜻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가 무엇이라고 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진리'라는 명사는 헬라어로는 '절대적 진실'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이치'가 아닌 '참'이요,'실제'이다. (헬라어로는 '이치'에 해당하는 어구가 없다.) 우리는 많은 진실한 일들에서 그 이치는 알 수 없어도 그 사실과 실제는 만질 수 있다.

 

요한복음 1장 17절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는 점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어떠한 태도가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의 일종이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역사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피를 흘리시어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를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줄 수 없다. 하나님은 모세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십자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그러므로 은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한 구절의 말씀에서 한면으로는 은혜를 볼 수 있고 또 한면으로는 진리를 볼 수 있다. 은혜는 예수로 말미암아 왔고, 진리 역시 예수로 말미암아 왔다. 또한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주시어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진리를 성취하신 것이 은헤를 성취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아들의 역사로 인하여 은혜가 있고, 그 아들의 역사로 인하여 진리가 있는 것이다. 주 예수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오늘 은혜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은혜를 만들어 놓으셔야 사람들에게 은혜를 줄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믿는 바이다.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 진리를 만들어 놓으셔야 사람들에게 진리를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21절의 말씀에서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라고 했다. (원문에는 하나님이 "주 예수로 말미암아 진리를 성취하셨다"로 달리 번역된다.) 진리는 그 안에 있으며 진리는 그의 역사이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곧 진리요" (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성경 가운데서의 '진리'는 곧 실제라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이 실제인가? 그것은 곧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역사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실존하는 그것이 곧 진리요, 그것이 곧 실제이다. 주 예수께서 흘린 피는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다 구속해 왔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나는 주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속죄를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곧 나 자신이 주 예수로 인하여 성취된 사실인 것이다. 또한 내 속의 진실한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이미 이 역사를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 진리가 있다. 만일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근본 진리가 없고 실제도 없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본질상 죽은 사람이었고 죄인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지위가 없었다. 설 곳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주 예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가 진실로 실제인 것을 얻었고 또 하나님 앞에 실제가 있는 것이다. 그 실제는 바로 나 구원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성경 가운데 말하는 진리는 강대상에서 말하는 어떤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의 하나의 사실이다. 이론은 사람이 땅에서 전하는 것이요 진리는 주 예수께서 성취한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람으로 변했는가? 주 예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나를 젼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실제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역사로 말미암아 변화한 그것이 곧 진리요, 이 진리는 곧 주 예수 자신이다. 그러므로 모든 실제는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 많은 사실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오직 그리스도 자신이다.


1. 진리가 우리를 해방함

 

우리에게는 분명히 진리가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기에 즉시 뒤따르는 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찾아 보기로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는 상태와, 우리가 땅에 있는 상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십자가의 역사는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멀었다. 주 예수께서 변하게 하신 '나'와 땅에 있는 '나'와는 아주 다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곧 우리 자신의 상태와 하나님 앞에 있는 진리와는 젼혀 상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기의 느낌과 경험을 힘입어 나아가고 하나님의 진리를 힘입어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의 느낌에 반대되고 우리의 경험에 반대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곧 무엇이 참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성취하신 그것이 참인가, 아니면 우리의 느낌과 경험이 참인가? 과연 그 무엇이 참인가?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허다한 경우, 우리는 무엇이 참인가를 보지 못하고 무엇이 실제인가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묶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발견할 때 진리는 반드시 우리를 자유케 하고 우리를 해방시킨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들어 진리가 우리를 해방시킨다는 뜻이 무엇인가를 보기로 하자.

 

우리는 먼저 구원받은 것으로부터 말하기로 한다. 어떤 사람이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심으로 그의 죄가 사함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듣고,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고 주님을 영접했다. 또 누구든 그에게 "당신은 주님께 속한 사람입니까?"라고 물을 때 그는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 때 그의 속에는 정말 기쁨이 충만했다.

 

그러나 삼 개월, 오 개월이 지난 후 그의 몸이 불편했고 가정의 어려움도 많아 기쁨은 멀리멀리 떠난 느낌이었다. 그 때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않은 것같이 느껴졌고 하나님의 자녀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이때 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구원받았읍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대답하기 난처한 심정입니다. 지금 나에게서는 전의 그 기쁨은 사라졌고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도 모르겠읍니다. 나는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읍니다."

 

이 때 우리는 그에게 어떻게 말해 주겠는가?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면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의 느낌으로는 구원받은 것 같지 않아도 당신이 구원 받은 것은 사실이요,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느 편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다. 느낌으로는 구원받은 것 같지 않아도 주님의 역사를 바라 볼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형제여, 결코 변치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느낌이 뜨거워도 구원받은 것이고 당신의 느낌이 뜨겁지 않다 해도 당신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느낌은 변할지라도 주 예수께서 당신을 위하여 이루어 놓은 역사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주신 그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편에서 보고 계십니까?"

 

주님은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 눈이 열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주 예수의 역사로 말미암아 얻은 그것이 곧 실제요 곧 진리라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해방을 받고 자유케 된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느낌으로서 해방받는 것이 아니요, 해방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 앞에 있는 실제이다.

 

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확실히 회개한 사람이었고, 확실히 주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확실히 거듭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의 속의 느낌이 변하여 몹시 고통스럽게 되었고 꼭 멸망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때 어느 한 형제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멸망할 것 같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제가 전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속은 식어졌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성경을 읽어도 빛이 없습니다." "그 말은 당신 편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 이제는 하나님 편에서 몇 가지를 봅시다. 주님의 역사에 에누리가 있읍니까?" "없읍니다." "그러면 주님의 역사에는 변함이 있읍니까?" "없읍니다." "그렇다면 주 예수의 역사가 무효가 되어 버렸읍니까? 주님의 피로 세운 언약은 해약되어 버렸읍니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실제에 있어서 당신의 하나님 앞에서의 구원은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느낌에 변함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느낌으로 구원을 받았다 해도, 또 안 받았다 해도 관계 없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당신이 구원받았다고 하셨읍니다. 이것이 변할 리 있읍니까?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은 구원 받은 것은 진리에 있는 것이요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 형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내 생각으로 구원받았다 해도, 내 말로 구원받았다 해도, 내 느낌으로 구원받았다 해도 다 소용 없군요,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면 구원받은 것을..."

 

이것이 바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가 우리를 어떻게 해방시키는가에 대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거듭남으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또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안에 넣어 놓으셨으며 우리의 옛사람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단체의 죽음이었다. 그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도 그 안에서 같이 죽은 것이다. 그가 성취하신 것은 우리가 이미 죽은 자 됨이다. 이것이 진리요, 이것이 실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묶여 있게 된다. 곧 우리가 자신을 살펴 볼 때 우리에게는 여전히 혈기가 있고, 내 자신에게 부딪혀 볼 때 나는 여전히 약하고,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은 것이란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 되는 것은 내 자신의 경험과 느낌이 실제냐, 아니면 주님의 역사가 실제냐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가며 자신에게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그 묶여 있는 상태가 가장 실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알려 주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만이 실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아들이 하신 일이다. 우리 옛사람은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것이 진리이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혈기의 종이 되고, 경험에 묶이게 되고, 감정에 묶이게 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우리를 능히 해방시킬 수 있을까? 오직 진리만이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우리의 느낌을 중시하고 우리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게 되면 우리는 계속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은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해방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또 한 가지 일, 곧 주님의 승리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과거에 어떤 형제가 몇 개월 동안 심신 양면으로 사탄의 시험에 걸려 있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아는 것을 다 동원하여 그것을 막고 기도하기를 삼 개월 동안 계속했다. 막을 대로 막아 보고, 기도할대로 기도해 보았으나 사탄의 침투는 계속될 뿐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주님께 말했다. "저는 사탄을 막지 못하겠읍니다. 제겐 막을 힘이 없읍니다. 저는 기도할 수 없읍니다. 제게는 막을 힘이 없읍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보게 하소서, 저의 병이 어디에 있는가를, 주여. 왜 이렇습니까?" 그 때 하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에게 한 마디를 주셨다. 그 한 마디는 그가 과거에 희미하게 보았던 것이지만 지금은 뚜렷이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곧 나는 사탄을 이렇게 막아서는 안 되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는 실제를 보았다. 그 실제는 무엇이었던가?

 

이는 곧 주 예수님이 이미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주님이 승리하실 것이니 내가 그 뒤를 따라가서 같이 승리하리라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미 승리하셨다는 것이다. 또 사탄이 실패하리라는 것이나, 내가 주님 앞에 기도하여 사탄이 실패하게 해 주십사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찬미를 드리는 것은 사탄은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래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다. 그가 이 사실을 본 순간 그에게서 사탄의 시험은 끝났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도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다. 이것이 곧 실제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2. 진리와 빛

 

진리를 볼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빛이 온다. 시편 43편 3절에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했다. 하나님은 무엇을 비추시는가? 하나님은 자기의 진리를 비추신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빛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된다. 진리는 설교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반드시 빛이 옴으로써 알게 된다.

 

오늘 형제 자매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는가?"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다 "나는 이미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죽음은 도무지 효력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론만을 들은 것이요 실제로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실제를 볼 때 그는 그 빛을 얻을 수 있다.

 

어느 형제는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게 하시어 로마서 6장의 말씀과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을 보게 하셨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본 것은 하나의 사실이었다. 또 그가 주님의 승리에 참여한 것도 한 사실이었다. 과거에 그는 계속 얻기를 바래왔지만 현재에는 이미 얻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님의 승리를 바랬으나 현재에는 주님이 이미 승리하신 것을 찬미하게 되었다. 그는 또 말했다. "나의 이러한 생활은 이전 생활과는 전혀 다르다. 과거의 모든 것이 다 환상과 사모함과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다 실제이다. 과거에는 내 손으로 붙잡으려 했으나 현재에는 이미 내 손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이 올 때 우리는 기뻐 뛰며 말할 것이다. 이미 이루어졌다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빛을 본 사람이다. 적어도 '구원받을 때 한번' 이라도 빛을 본 것이다.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장래 얻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성취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이 빛으로 실제를 볼 때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빛으로 이 사실을 본 사람이다. 모든 영적 경험은 다 빛으로 진리를 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전할 때 빛이 없으면 그것은 이론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진리를 전할 때 하나님의 빛이 그 위에 비취면 그 진리를 곧 계시다. 또 이 계시를 얻을 때 진리를 얻게 된다. 이론을 얻은 자는 다만 머리에 충만한 것이 이상이요, 오직 진리를 얻는 사람만이 실제와 생명을 얻는다.


3. 진리의 영과 진리의 말씀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볼 때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영적 실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한다. 우리가 알 것은 보혜사가 곧 진리의 영이라는 것과 성경이 곧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리의 일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하신 것이다. 성경은 이 모든 진리의 사실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이 진리의 말씀을 믿을 때 성령은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다. 곧 영적 사실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곧 그 실제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인도하여 실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시므로 우리의 모든 것이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고 또는 내 느낌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내 경험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실안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는 계시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우리가 계시를 얻을 때에는 우리의 경험을 생각지 않고 우리의 느낌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사실만을 확신하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옛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그에게 계시가 그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의 옛사람이 죽은 것이 절대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령의 계시가 있는 자만이 능히 그 실제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로 계시를 얻게하여 그 사실을 보게 한 후에야 우리는 감히 옛사람이 죽은 그것이 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것은 "하나님이 성취하신 것을 우리는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영적 경험이다. 하나님이 이미 성취하신 사실을 보았다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이며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때야말로 나는 참된 경험을 한 것이며 주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하사 우리가 무엇이 진리인지를 보게 하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참으로 이 진리를 볼 때, 진리가 반드시 우리를 해방시킨다. 진리로부터 오는 것은 다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또 진리로부터 오는 것은 우리로 진리를 구하게 한다. 이 뜻은 바로 이 진리는 실제를 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를 주사 우리로 실제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구하는 바이다.


워치만 니
[열두 광주리 가득히 4,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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