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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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3:15, 22:18上, 갈라디아서 3:16, 로마서 5:15下, 19, 고린도전서 15:21, 디모데 전서 2:5, 히브리서 2:9, 14-18, 요한 계시록 1:13, 요한복음 19:5

 

두 극단들

 

기독교 안에는 예수의 인격에 대한 두 극단이 존재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대주의자들은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해 많이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만 일개 유대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분이 사람이 되시기 위해 성육신되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서 그들은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이 극단적인 가르침은 옳지 않을 뿐더러 이 땅과 우주 안에서 가장 큰 이단이다. 예수께서 성육신되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이단이다.

 

현대주의자들의 이단의 가르침의 영향으로 근본적인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쳤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매우 많이 설교하고 가르친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 잘못된 것이 없으나, 그들은 예수의 인성을 소홀히해 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아주 많이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해서는 거의 가르치거나 설교하지 않는다. 이것이 원수의 은밀한 간교함이다. 한면으로 원수는 사람들이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도록 두지 않고 또 한면으로 간교한 자는 우리로 주님의 인성을 무시하고 이것만을 가르치도록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오늘날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이 그분의 신성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더욱 그분의 인성에 달려있음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궤와 성막의 기본 골격과 구조가 금이 아닌 나무임을 언급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그분이 성취하신 것이 신성한 본성에 달려 있다기 보다는 더욱 사람의 본성에 달려 있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주된 구조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과 오늘날 모든 어떠하심은 그분의 인성을 요구한다.


다른 근원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인성이 우리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님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는 남자에게서 났고 그분은 여자에게서 나신 이유이다. 우리는 남자의 후손이지만 그분은 여자의 후손이시다. 그분과 우리는 모두 사람이지만 그 근원은 다르다. 그분은 사람이시지만 그분은 다른 범주의 사람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근원이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고 놀라운 일이다. 단지 성령 만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분명하게 설명하실 수 있다. 그 여자 또한 우리의 근원의 후손이지만, 예수님은 그 근원으로 말미암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또 다른 근원으로서 여자에게서 나셨다. 이 다른 근원은 우리의 근원과 관계를 갖고 있지만, 그 둘은 서로 다르다.

 

그분은 친히 인성을 입으셨고 바로 이 인성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원수인 뱀을 멸하기 위한 주요 구조이다. 이 인성, 이 구조에 의해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 22:18上).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사단인 뱀은 이 인성을 통해 상하고 멸망당했고, 하나님의 축복은 이 인성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임했다. 심지어 그 모든 은사와 함께 은혜도 이 인성을 통해 넘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롬 5:15下).


의인으로 조성됨

 

우리는 또한 이 사람으로 인하여 의인으로 조성되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조성되었지만, 다른 한 사람 예수로 인해 우리는 모두 의인으로 조성되었다. 우리는 바로 이 한 사람에 의해서 의인이 된 것이다.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역사와 가르침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가르침을 회복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회복의 선구자였다. 그는 이 문제에 관해 천주교에 대항하여 싸웠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옳지만,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사람들에게, 의롭게 됨은 바로 그리스도임을 말해 주어야 한다고 느낀다. 오늘날 어떤 루터교 주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됨이라는 가르침을 붙잡고 있지만 자신은 결코 의롭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교리를 붙잡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여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할렐루야, 예수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의 것이다!』 당신은 이 사람이 이미 의롭게 된 사람임을 믿지 않는가?

 

당신이 이신칭의(以信稱義)를 정의하고 있는 대사전을 읽을 지라도,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를 한 인격으로서 누린 적이 없다면, 당신은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 의롭게 되는 것은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은 하나의 인격이다. 우리는 가르침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롭게 됨이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의롭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 부활하심

 

고린도 전서 15장 21절에서 우리는 사람으로 죽으시고, 사람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을 볼 수 있다. 부활은 사람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왔다. 옛뱀의 멸망,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 모든 은사와 함께한 넘치는 은혜, 의롭게 됨, 그리고 죽음에서의 부활은 모두 예수의 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다.


사단이 멸망당함

 

한면에서 사단은 십자가 위에서 상하고 멸망당했지만, 다른 면에서 그는 여전히 여기에서 말썽을 일으킨다. 사람인 우리는 손상시키는 사단의 영향 아래에 있다. 어떻게 우리가 이 손상케 하는 뱀을 멸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분의 인성을 누리고 먹을 때, 사탄은 멸해질 것이다.

 

요한복음 6장 57절에서 주님은,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서의 「먹는다」라는 단어는 그 장의 먹는 것에 대한 다른 단어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단어이다. 한 번역본은 이 단어를 「씹어 먹다」로 번역했다. 이것은 잘게 씹어 먹는 것, 천천히 잘게 조금씩 먹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을 먹어야 하며, 때로는 그분을 잘게 씹어 먹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번에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조금씩 먹는 것이다. 너무 빨리 먹는다면 우리의 위(胃)가 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인성을 잘게 씹어 먹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이렇게 먹는다면, 옛 뱀은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박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잘게 씹어 먹는 것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사람이신 예수를 마음껏 먹고 누릴 필요가 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

 

예수 안에서 모든 열방이 축복을 받았고, 우리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가운데 있는 실지 상황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열방이 축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때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축복을 받지 않고 저주를 받는다. 우리의 아내나 남편이 우리를 통해서 축복을 받는가, 아니면 저주를 받는가?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의 인성을 먹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1938년, 나는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한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부터 가족을 소홀히 여긴다는 것으로 우리를 대단히 비난했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에 너무 바빴다. 그녀의 남편은 그때까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중국에서 가장 큰 대학의 교수였다. 내가 형제 자매들을 만나 그 자매에 관해 말했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신은 이제 예수만을 위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이나 자녀를 위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자매는 예수의 인성을 결코 맛보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그 당시 나는 예수의 인성을 누리는 것에 대한 빛을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어느 정도 균형 잡힐 필요가 있다고만 말했다. 만일 같은 문제가 오늘 발생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집에 가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인성에 관련된 모든 구절들을 기도로 읽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그들이 어떤 유의 아내 또는 남편,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되어야 할지를 알 것이다.

 

한면으로 주님은 그분의 어머니에게, 그분이 전적으로 하늘의 아버지를 위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그분은 그분의 양친과 함께 내려가셨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복종시키셨다(눅 2:49-51). 이것이 주 예수님의 인성이다. 이러한 인성을 통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천사」와 같아서 우리의 이웃들이 축복을 받지 못할까 두렵다. 문제는 우리가 악마와 같은 데 있지 않고 「천사」 같은 데 있다. 우리는 합당한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 될 필요가 있으나 천연적인 방식으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예수의 인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천사」처럼 행동할수록,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합당한 사람으로서 살수록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더욱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역시 1938년에 중국에서 또 다른 자매가 나에게 왔다. 그녀는, 『내가 남편에 대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주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주 예수님에 대하여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면 할수록 그는 더 멀리 가버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녀가 매우 「천사」 같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그녀 자신을 약간 조절해서 그녀의 남편에게 평범한 아내가 되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녀가 만일 조정받는다면 그녀의 남편이 구원받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그녀의 남편이 구원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다.

 

하나님은 결코 천사들에게 그분의 복음을 맡기지 않으셨다. 오로지 사람만이 복음을 전하는 데 적합하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베드로라 이름하는 사람을 청하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복음에 관한 말은 할 수가 없었다(행 10:3-5). 천사들은 복음을 전파할 자격을 갖추지 않았다. 사람에게만 자격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자아를 따라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귀적이다. 우리는 다른 범주의 인성에 있을 필요가 있다. 그분의 인성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만일 우리가 예수의 인성을 취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직장이나 학교, 대학이나 이웃이나 가족 등 이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며, 그럴 때 복음이 세력을 잡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인성의 구원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 2장에 있는 주님의 인성의 공급을 계속 보아야만 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4-18).

 

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혈육에 참여하시어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 해방이 여기에 있고, 화해가 여기에 있으며 구원이 여기에 있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 그 단어는 헬라어에서 지지하거나 어떤 도움을 주거나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항상 예수의 인성을 잘게 씹어 먹는다면 우리는 구원과 도움과 공급과 같은 것을 제공받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든지 우리는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신 구원자라는 종교적인 관념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여전히 사람이심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인성을 어떻게 누리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제물 가운데에서 소제는 가장 중요하다. 오직 이 제물만이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고 그분께 일종의 기념이 될 수 있다. 단지 이 제물만이 제사장에게 살아 있는 것을 제공할 수가 있다. 우리는 소제이신 그리스도의 어떤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 안에서 크게 소홀시 되고 있다. 부디 주님께서 예수의 합당한 인성을 회복하시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상태만 보고 높은 곳을 향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마도 오년 전에 그들은 소위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위로부터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이 능력조차도 그들의 성질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우리의 성질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전능하신 구원자이신 주님을 바라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성질을 갖게 되는 것같아 보인다. 심지어 주 예수님조차도 이러한 종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단순히 소제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기를 배우고 그분의 인성을 종일 먹기를 배운다면 우리는 우리의 성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인성으로부터 해방과 구원과 지지와 공급을 받게 될 것이다.


합당한 인성의 결핍

 

만일 우리가 어떤 질병을 앓고 있다면 의사들은 그것이 영양 공급이나 비타민의 결핍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에게 생명 공급이 부족하다면 분명 당신은 일종의 질병을 앓고 있을 것이다. 나의 모국에는 야맹증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다. 이것은 질병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타민에 관한 아무 지식도 없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비타민 A의 결핍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닷가에 살았고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잡았다. 그들이 그러한 종류의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회복되었다. 물론 우리는 오늘날 살아 있는 물고기 안에 비타민 A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점은 바로 이것이다. 만일 우리가 비타민 A 결핍증으로 우리의 시력을 잃고 나서야 우리를 치료하실 전능하신 구원자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시력을 더 잃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많은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소제이신 예수의 인성이다.

 

성질을 쉽게 내는 것은 하나의 질병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은 그 마을 사람처럼 예수의 인성을 먹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소제이신 주님의 인성을 필요로 함은 성경에서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수년 동안 성경을 읽어 왔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어리석게도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에 의해 가리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천연적인 관념을 잊어버리고 어떠한 종교적인 사고도 없이 순수한 말씀으로 나와야만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중요성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에 있는 한 사람

 

어떤 기독교인들은 나와 논쟁하고서 오늘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사람으로서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까지만 사람이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그분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경 말씀을 한구절 한구절 다 믿는다고 하는 설교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도행전 7장 55절과 56절에서 스데반이 돌에 맞을 때 위를 보고 하늘에서 여전히 인자이신 예수님을 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따르면 나의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으로서 하늘에 계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심문할 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물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인자가 하늘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63-64).

 

물론 그들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러한 성경 구절은 없다. 그리고 나는 덧붙여 반드시 인자가 영원함을 우리가 볼 것임을 말해야 했다. 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서 거기에 계신다. 주님께서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그분께서는 반드시 인성을 가지셔야만 했다. 그분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불리우셨다. 어린양은 항상 성육신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만일 그분이 사람으로서 성육신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실 수 있겠는가? 영원 안에서 그분은 영원히 인자이실 것이다.


교회들 가운데 계신 인자

 

다음으로 계시록 1장 13절에서 요한은 지방 교회들 가운데 계신 인자의 이상을 보았다. 『촛대 사이에 인자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주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요한은 인자로서 지방 교회들 가운데서 운행하시는 그분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인성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모두 그분의 인성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 우리 모두의 시간을 할애한다면 모든 지방 교회들은 아주 분명하고 빛나며 실제적이고 참될 것임을 완전히 확신한다.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자의 모양으로 오셨다. 이것은 인자가 지방 교회들을 위하심을 보여준다.

 

모든 지방 교회들은 예수의 인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을 우리의 음식으로 취해야 하고 그분을 누리고 그분의 인성을 항상 먹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오 주 예수여, 당신은 참 사람이시고 당신은 제사장의 음식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께 선물로서 회막에 드릴 소제이신 고운 가루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조차도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의미는 거기에 영양 공급이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인성으로 인해 영양 공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공급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약함을 삼킬 것이다. 예수의 인성은 우리를 영적으로 강건하게 만들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나를 믿기 어렵다면 그것을 실행해 보라. 당신은 화가 나려고 할 때 이렇게 말해 보라. 『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의 인성을 취합니다. 나는 성질이 나려고 하지만 주여, 나는 당신의 인성을 취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성질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2장에 있는 구원

 

나는 우리 모두 히브리서 1장과 2장의 차이를 보았을 것이라 믿는다. 1장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한다. 심지어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언급한다. 1장은 그분의 신성을, 2장은 그분의 인성을 말한다. 1장에서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2장에서 그분은 사람이시다. 2장의 끝에서 우리는 해방, 구원, 지지, 도움과 공급을 발견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로부터라기 보다 예수의 인성으로부터 온다.

 

사람 예수는 해방하시는 분이시다. 또한 그분은 구원하시는 분이시요, 지지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공급하는 분이시다. 우리의 도움과 지지는 주로 그분의 인성으로부터 온다. 그분의 신성은 다소의 천사들을 해방하고 공급하는 데 충분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해방하시고 공급하시는 데 있어 그분은 반드시 그분의 인성을 가지셔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해방을 누리기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인성을 먹어야만 한다. 이것이 소제이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수년 동안 기독교 안에 있어 왔다. 그러나 이른바 그리스도인들의 봉사라는 것 안에서 어떤 소제라도 발견할 수 있었는가? 그러한 봉사 안에 예수의 인성으로부터 어떠한 영양 공급이라도 있었는가? 나의 체험에 따라, 나는 당신에게 거기에 아무것도 없고 다만 말만 있음을 말해줄 수 있다. 거기에는 아무 소제도 없다. 심지어 지방 교회 안에서도 나는 우리가 충분한 소제를 가지고 있지 못함을 느낀다.

 

우리는 반드시 지금부터 모든 집회 안에서 주된 소제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그분의 긍휼을 얻기 위해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와 인성에 대한 우리의 체험의 어떤 것을 집회에 가져와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집회는 아주 풍성하게 될 것이고 참된 제사장 체계를 가진 제사장의 길 안에서 영양 공급을 받게 될 것이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결국 우리는 반드시 『보라 이 사람이로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그분은 관을 쓰셨고 그 후에 가시면류관을 쓰셨다. 그러나 그분은 오늘날 영광의 면류관으로 관 쓰셨다. 그분은 자색 옷을 입으셨지만 이제 그분은 제사장 옷을 입고 계신다. 그분은 모든 지방 교회들을 돌보시기 위하여 영광으로 관 쓰셨고 제사장 옷을 입으셨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우리는 모두 이 사람을 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은 우리의 구원, 우리의 도움, 우리의 지지, 우리의 공급과 우리의 모든 것이시다. 이 사람이 제사장 체계를 위한 우리의 음식이시다.


위트니스 리
[실제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인성의 풍성한 공급",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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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자기의 날짜를 계산하라 3 청지기 12.05.03.11:53 5110
162 합일 청지기 12.05.03.11:48 4481
161 혼의 잠재력 2 청지기 12.05.03.10:53 4018
예수의 인성의 풍성한 공급 청지기 12.05.03.10:38 3000
159 소제의 향료들 청지기 12.05.03.10:32 3335
158 하나님의 요구들과 하나님의 양식 청지기 12.05.02.13:49 2618
157 회막과 모든 제물들 청지기 12.05.02.13:37 3154
156 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청지기 12.05.02.13:34 2898
155 세 가지 생명과 네 가지 법 청지기 12.05.02.13:28 2969
154 영과 혼의 분별 청지기 12.05.02.13:19 4457
153 부모 청지기 12.04.30.18:32 3633
152 부부 청지기 12.04.30.18:21 3230
151 청지기 12.04.30.18:12 2575
150 금욕주의 2 청지기 12.04.30.18:04 2833
149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의 목적을 이루는 집회 청지기 12.04.24.11:01 2276
148 그리스도의 승리로 그분을 전람하는 집회 청지기 12.04.24.10:54 2244
147 영의 정상적인 상태 청지기 12.04.24.10:37 2516
146 생각으로 영을 보조하는 원칙 청지기 12.04.24.10:29 1959
145 영의 법칙들 청지기 12.04.23.19:55 2487
144 영적 노정의 위험 청지기 12.04.23.18:43 1790
143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성장하는 길-여김 청지기 12.04.23.18:26 2014
142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성장하는 길-앎 청지기 12.04.21.14:31 2056
141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그리스도의 십자가 청지기 12.04.21.14:26 2047
140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그리스도의 피 청지기 12.04.21.14:19 1905
139 속 부분과 감추인 부분을 파 내기 청지기 12.04.20.14:10 1243
138 혼의 처리 청지기 12.04.20.14:06 1159
137 마음과 영의 처리 청지기 12.04.20.13:57 1112
136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청지기 12.04.20.13:53 1177
135 애정(affection) 청지기 12.04.20.13:50 972
134 부활 후의 십자가의 부르심(2) 청지기 12.04.20.13:45 988
133 부활 후의 십자가의 부르심(1) 청지기 12.04.20.13:37 942
132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청지기 12.04.20.11:21 1026
131 신언하기를 실행함 청지기 12.04.20.11:13 1053